<시리즈> 연중기획 SW산업을 살리자 (13);WP산업 현황

한글워드프로세서(WP)는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에 대항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로서 사실상 국산 소프트웨어산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국산 WP시장 점유율은 90%를 넘어서고 있다.

국산 한글WP제품이 자본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외산 제품 공세에 맞서 국내 시장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력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한글이라는 민족 문화 유산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 즉 우수한 한글WP제품이라면 한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데다 국내 사무환경 특유의 문서 양식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같은 조건이라면 국내 업체가 절대로 유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1바이트 문자체계인 영어 알파벳과 달리 2바이트 문자체계인 한글 자모의 처리도 외국업체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글WP분야는 처음부터 국내 개발자들에 의해 개발돼 선보여졌다. 82년 박현철씨(현재 미국체류중)가 개발한 8비트 애플컴퓨터용 「한글워드프로세서 1.0」을 시발로 고려시스템·삼보컴퓨터·삼성전자·금성사·현대전자 등이 잇따라 제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들 제품들은 개발사의 PC외에는 실행되지 않아 호환성에는 문제가 있었다.

88년이후 강태진씨와 이찬진씨 등 전문 개발자들은 그래픽환경을 이용해호환성 문제를 극복한 「한글2000워드」·「한글」 등 제품을 개발,한글WP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하드웨어 제품에 의존하지 않은 독립적인 소프트웨어의 시장 활성화 시대들 알렸던 것이다.

「한글」의 인기에 고무된 이찬진씨는 90년 한글과컴퓨터사를 설립,91년한해동안 「한글」제품 하나로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함으로써 한글WP 뿐아니라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기에 이르른다.

한글WP시장은 한글과컴퓨터의 성공과 함께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90년 초반 이후 현재까지 약 50여종의 한글WP제품이 개발돼 나왔다.91년에는삼성전자가 국내 처음으로 윈도용 한글WP인 「훈민정음」을 내놓고 윈도시대의 개막을 주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몰고온 윈도용 한글WP바람은 94년에 정점에 다달았는데 이당시 제품 종류는 국산 외국산을 합쳐 20여종에 이르렀다. 한글WP시장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였지만 제품 개발 공급업체들 입장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불가피한 시기이기도 했다.

96년 현재의 한글과컴퓨터·삼성전자·마이크로소프트등 3사 구도가 잡힌것도 이 때를 기점으로 하고 있다. 시장 재편 과정에서는 한글과컴퓨터의 회생,중소업체들의 전멸,외국업체들의 몰락과 같은 3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이 가운데 한글과컴퓨터의 회생은 매우 극적인 요소가 있었다. 한글과컴퓨터는 시장흐름이 모두 윈도환경으로 전환해간 95년 3월까지도 윈도용 제품을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이해 3월에 발표된 윈도용 「한글3.0」은제품 안정성에 적지 않은 오류가 발견되는 등 문제가 많아 한때 8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던 한글과컴퓨터의 몰락이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글과컴퓨터는 95년 8월 「한글3.0b」를 발표하면서 96년 현재 시장점유율 40% 이상을 회복하는 의욕을 보였다.

한글과컴퓨터의 회생은 그러나 제품개발 기술이 뛰어나서 라기 보다는 그동안 쌓아놓은 기업이미지나 재품브랜드에 힘 입은바 컸다는 분석이다.

자본력에 취약할수 밖에 없는 중소기업의 전멸은 한글WP분야 시장 선점이 대자본과 끊임 없는 기술 개발이 동시에 이뤄져 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한메소프트의 「파피루스」,큐닉스컴퓨터의 「글마당」,휴먼컴퓨터의 「글사랑」,한컴퓨터연구소의 「사임당」등 상당한 지명도가 있었던 제품들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거나 시장세가 급격하게 퇴조해버린 것은 그 대표적인예라 할수 있다.

외국업체들의 몰락은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한글의 문화적 특성을 제대로이해하지 못한 제품 출하를 강행했다는 점에서 예고된 것이긴 했다. 로터스의 「아미프로」,워드퍼펙트의 「워드퍼펙트」,마이크로소프트의 「MS워드」등이 시장진입을 시도했으나 이가운데 「MS워드」만 살아남은 상황이다. 「MS워드」의 경우는 한글의 문화적특성에 대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사용자지원,및 윈도운용체제 공급회사로서 기술적 이미지덕을 크게 본 경우에 해당한다.

96년초 현재 형성되고 있는 한글과컴퓨터·삼성전자·마이크로소프트의 3강의 시장점유율은 기존 사용자 점유율까지 계산할 경우 약 8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머지 20% 가운데는 LG소프트웨어가 공급하고 있는행정전산망용 「하나」가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핸디소프트의 「아리랑」등이 그뒤를 잇고 있다. 1백% 관납이던 「하나」의 경우 현재는 정상적 제품공급은 중단된 상태이다.

3강의 제품만을 기준으로 할 때는 한글컴퓨터의 「한글시리즈」 74% ,삼성전자의 「훈민정음」시리즈 19%,마이크로소프트의 「MS워드」시리즈 7%대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96년 상반기 동안에만 공급된 3강 제품의 시장점유율만 따지면 「한글」시리는 35%,「훈민정음」45%,「MS워드」20% 대로나타나 「훈민정음」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훈민정음」은 지난해부터 급격한 시장점율을 보여왔는데 가장 큰 이유는삼성전자가 공급하는 「매직스테이션」등 PC에 무조건 끼워 팔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용자으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번들제공된 「훈민정음」은 실제 사용율에서는 「한글」이나 「MS워드」에 크게 뒤져 있는 것으로나타나고 있다.

3사의 마키팅 전략은 한 회사가 새로운 전략을 도입하면 경쟁회사도 이를뒤따라 가는 도미노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가 주도한 PC번들 전략의 경우 제살을 깍아먹는 결과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경쟁사들이시장 점유율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통합패키지인 슈트전략의 확산도 PC번들 전략과 유사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WP·스프레드시트·그래픽스 등을 하나로 묶은 슈트「MS오피스」를 내놓자,한글과컴퓨터가 로터스사와 제휴해서 같은 종류 제품인 「한글오피스」를 내놓은 바 있고 삼성전자도 「훈민정음」을 축으로 한유사제품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글WP분야의 최근 기술동향으로는 플랫폼환경에서 32비트 운용체제 「윈도95」 및 인터네트 문서(HTML) 지원 기능이 추가되고 있음을 들수 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최근 갈수록 까다롭고 고급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국내 사용자들의 성향을 감안해 볼 때 빠르면 올연말 쯤엔 「윈도85」와 HTML지원기능의 내용에 따라 또 한번의 시장 재편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처럼 기술변화에 적극 대처하면서 동시에 사용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려는 노력은 특히 한글WP개발 공급회사로서는 필연적 과정이라 하겠다.

<특별취재팀>

컴퓨터산업부 서현진차장 이재구차장 함종렬기자 김상범기자

정보통신산업부 구근우기자 이일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