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삼국지 아시아 IT 대로망>13회-이치타로와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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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8년 6월이었다. 우키가와 가즈노리(將川和宣) 일본 저스트시스템 사장(51)은 현해탄을 건너온 뉴스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한글과컴퓨터라는 회사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투자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그 회사도 무릅을 꿇는구나」 우키가와 사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MS만 생각하면 한동안 삭였던 분노가 그의 온몸에 다시 도지기 때문이다. MS는 고생하며 키운 일본 워드프로세서시장을 가로챈 바로 그 회사가 아닌가.

우키가와가 회사를 차린 것은 79년 7월. 「입지(立志)」의 나이에 접어든 해였다. 두살 아래인 아내와 회사를 차렸다. 회사라고 하지만 처가댁 응접실에 소파와 PC 한대 놓은 게 전부였다.

창업을 결심한 건 1년전이었다.

도시바 계열 사이시바(西芝)전기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때다.

도시바가 개발한 일본 최초의 워드프로세서 「JW10」가 나왔다. 형편없었다. 일본어는 가나와 한자를 혼용하는데 가나만 쓸 수 있는 불완전한 프로그램을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다.

「완전한 일본어처리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을 제의한 건 아내 하시모토 하스코였다. 아이엔(愛媛)현 국립대학 동창생인 하시모토는 일본유니시스의 전신 다카치오바로스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그는 「JW10」보다 훨씬 좋은 제품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만들기만 하면 엄청난 부도 쌓을 수 있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각각 회사에 사직서를 낸 부부는 집에만 틀어박혀 연구개발에만 몰두했다.

82년초 드디어 우키가와와 하시모토는 환호성을 질렀다. 일본 최초의 첫 PC용 일본어 변환처리시스템 「ATOK」를 개발한 것이다. 언론이 흥분했다. 대형 PC업체들도 관심을 표명했다.

자신감을 얻은 우키가와와 하시모토는 본격적인 워드프로세서 개발에 들어갔다. 장인인 하시모토 아키라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년뒤 저스트시스템은 「JS워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NEC의 독자 PC에 작동할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다. 불티나게 팔렸다.

저스트시스템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85년 「JS워드」의 개선판인 「타로(太郞)」를 발표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워드프로세서인 「이치타로」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자체 건물도 샀다. 매출도 눈덩이처럼 늘어나 최고의 소프트웨어업체로 우뚝 섰다.

하지만 너무 앞서갔다. MS가 윈도 개념을 적용하기 전인 89년 내놓은 「이치타로 4.0」이 화근이었다. 잦은 버그로 결국 리콜해야 했으며 90년대 초반까지 매출 격감으로 휘청거렸다.

그렇지만 윈도시대의 개막으로 「이치타로」는 다시 살아났다.

윈도 3.1용 이치타로를 내놓고 재기에 성공했다. 또 그래픽소프트웨어 「하나코」, 스프레드시트 「산시로」 등도 개발해 MS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일본에서 들려온 소리에 MS는 긴장했다. 가만히 놔두어도 허물어질 것 같던 회사가 다시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이젠 자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 든다.

코렐의 「워드퍼펙트」와 로터스의 「로터스 1, 2, 3」도 제압했던 빌 게이츠로선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한국에 앞서 일본을 먼저 손좀 봐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한국보다 글로벌한 기업이 많은 일본의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공략하는 게 손쉽게 보였다.

대대적인 저가 및 광고 공세를 펼쳤다. 그 효과는 96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깔린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신규 구입자들은 「MS 워드」만 찾기 시작했다.

저스트시스템의 점유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한컴 사태가 났을 때 저스트시스템은 MS에 한창 밀려 회복불능으로 가던 때였다.

그래서 우키가와 사장은 한컴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한컴사태를 보며 한가지 부러운 게 있었다. 「아래아한글」에 대한 국민적 애정이었다.

한컴이 MS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개발을 포기한다고 하자 한반도에서는 반대운동이 들끓었다. 아래아한글을 써본 적도 없는 사람들도 가세했다.

우키가와 사장은 그렇게도 한글을 불법복제해 쓴 사람들이 이렇게 아래아한글살리기 운동을 하는 게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다고 한컴이 되살아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에서 똑같은 일이 생겨도 한국 국민들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하고 자문했다. 우키가와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컴의 아래아한글과 저스트시스템의 이치타로는 여러모로 비교할 만하다.

사실상 첫 워드프로세서로 국민적 기대속에 태어났다는 것, 그 힘으로 각각 자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했다.

다른 점도 많다. 아래아한글이 아마추어의 작품이라면 이치타로는 처음부터 시장성을 염두에 둔 제품이었다.

기업의 운영방식도 달랐다. 한컴은 워드프로세서에 집중했다면 이치타로는 이를 기반으로 스프레드시트, 그룹웨어 등으로 사업을 넓혀갔다.

그렇지만 우울하게도 두 제품은 결국 「MS 워드」에 밀려났다. 이치타로는 NEC 사용자 등 극히 일부 계층만 쓰는 제품으로, 아래아한글은 일부 개인 사용자나 공무원들만 선호하는 반쪽짜리 시장을 가진 제품으로 전락했다.

두 제품 모두 세계 표준을 장악한 「MS 워드」를 이기기에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앞으로도 더욱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두 회사는 아직 건재하다. 이유가 뭘까.

어찌됐건 두 회사는 자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산파역할을 맡았다. 한컴 출신 엔지니어들은 저마다 특장점을 살려 게임, 인터넷소프트웨어 등으로 영토를 넓혀가 한국 소프트웨어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한컴은 인터넷기업으로 변신하면서 살길을 찾고 있다.

저스트시스템 역시 일본 소프트웨어산업의 씨앗을 뿌렸다.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잃었지만 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해 후일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힘은 두 나라에서 이뤄지는 무차별적인 MS의 공세에서 버틸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하진 한글과컴퓨터 사장(42). 비록 창업자는 아니나 허물어가는 회사를 맡아 우여곡절끝에 되살려 놓았다. 한컴의 주주들이 다시 외자 유치를 추진해 시계추가 2년전으로 돌아가고 있으나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던가.

전하진 사장은 새로운 꿈을 꾼다. MS워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나라를 선점한다는 야망이다. 특히 MS워드가 장악한 중국과 일본시장을 승부처로 삼고 제품을 내놓았다. 「잘 만들면 사주겠지」 하는 아마추어적인 발상에서 일단 벗어났다.

현지 PC업체나 유통업체와도 제휴했다. 반응도 괜찮다.

그렇다고 전하진 사장은 MS와 직접 대결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깨질 싸움, 먼저 자극할 필요가 없어서다.

전하진 사장은 인터넷, 리눅스 등 강점을 가진 부문에 집중해 틈새시장을 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아래아한글」 자체에 대한 애정도 다소 식어가고 있으나 괘의치 않는다. 「고객과의 교류공간을 워드프로세서를 넘어 인터넷 등 다른 차원으로 넓히자」 전하진 사장의 생각은 이렇다.

사실 「아래아한글」만이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으나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훈민정음」이라는 토종제품도 있다. 한쪽에선 MS가 한컴보다 자본력이 우수한 삼성전자를 더욱 견제한다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은 워드프로세서와 백신, 그룹웨어에 국한됐던 토종 소프트웨어의 영역을 웹저작도구, 웹메일, 인스턴트메시징, 정보보안 등 인터넷 소프트웨어로 넓어지고 있다.

우키가와 사장 역시 「이치타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 한다.

어려울 때 왜 소니가 도왔겠는가. 또 인텔이 왜 무선이동통신기술 분야에서 자사와 제휴하려 했을까.

「이치타로」 자체보다는 음성인식 등 여기에 들어간 핵심기술을 높이 평가한 게 아닌가.

한국에 인터넷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일본은 음성인식 소프트웨어가 있다.

물론 두 나라 소프트웨어업체들이 거대 공룡 MS의 공세를 물리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인터넷과 리눅스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으며 여기에서 MS의 힘도 예전같지 않다.

「아래아한글」과 「이치타로」에 대한 두 나라 국민의 지독한 사랑은 그만큼 자국 언어에 대한 높은 자긍심에서 비롯됐다. 단일민족 국가라서 그런가….

글로벌 세상이 왔다고 이러한 자긍심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시원찮을 경우 애정이 점차 식어갈 것이다. 어쨌든 두 나라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척박한 토양이기는 하나 남다른 애정으로 인해 출발점 만큼은 앞에 뒀다.

골리앗의 줄기찬 추격을 따돌려 끊임없이 사랑을 받느냐, 사랑 대신 미움을 받느냐는 것은 결국 선수들의 몫이다. 관객은 그저 마음속으로 응원만 할 따름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