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탄생 20년](2)첫 탄생 주역 IBM 연구진

 【본지특약=iBiztoday.com】 IBM 시설로서는 가장 넓은 이곳 노스캐롤라이나주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가 ‘Ctrl-Alt-Del’키를 발명한 데이비드 브래들리(사진)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장소다.

 이제 백발 중년의 엔지니어가 된 브래들리는 “Ctrl-Alt-Del키를 발명한 사람은 나지만 그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덕분”이라고 말했다.

 브래들리의 연구실 벽에는 그의 부인이 지난 81년 8월 12을 기념해 찰리 채플린의 모습을 넣어 만들어준 자그마한 자수품이 걸려 있다.

 찰리 채플린은 IBM이 ‘현대의 도구’라는 개념을 적용한 PC 마케팅에 이용한 인물이다. 채플린의 1936년 작품인 ‘모던 타임스’는 기계문명에 대한 저항의 뜻을 담았으나 IBM PC는 역설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IBM PC의 판매량은 IBM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을 뿐 아니라 기업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에 있는 이 IBM연구소가 IBM PC사업부의 산실이라면 데이비드 브래들리는 PC개발의 산증인이다.

 브래들리는 IBM PC를 처음 개발한 기술팀에서 일했으며 아직도 IBM에 근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엔지니어에 속한다.

 현재 IBM의 x시리즈 서버관련 고급기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브래들리는 IBM의 PC 아키텍처 본부를 세우고 그 운영을 맡았던 장본인이다.

 브래들리는 최근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역사에 남을 중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지난 80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워싱턴주 벨레뷰에 있는 원내셔널뱅크 빌딩 8층에서 직원 40명만으로 운영하고 있을 당시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로 발전시킨 빌 게이츠는 사무실 바닥을 뒹굴며 IBM이 새로 개발하는 PC에 적용할 코드개발에 골몰하고 있었다.

 당시 브래들리의 나이는 31세로 대당 가격 1만달러의 중소기업용 컴퓨터 시스템인 데이터매스터(datamaster)를 개발중이었다. 당시 브래들리는 상사 지시로 몇 안되는 개발자로 구성된 ‘이상한’ 신규 프로젝트 팀에 참여하게 됐다. 조기 생산이 가능하고 사용이 간편한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팀에 참여한 개발자는 훗날 200명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브래들리가 이 팀에 일찍 참여해 좋았던 점은 Ctrl-Alt-Del키의 발명과 같은 개발실적을 지속적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키보드, 모니터, 프린터의 기본 입출력 제어분야를 담당했던 브래들리는 사용자도 모르게 컴퓨터가 재부팅되는 문제가 없도록 PC를 개발하고 싶었다. 당시 브래들리가 발명한 Ctrl, Alt, Del키는 오늘날 컴퓨터 사용자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기본지식이 됐다.

 퍼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브래들리는 PC관련 특허기술을 7가지나 보유하고 있으며 컴퓨터 스크린의 한 부분을 움직일 때 다른 부분은 그대로 있도록 한 윈도 전단계에 해당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당시 IBM 이외에도 PC개발 업체가 더러 있었지만 규모나 지명도에서 IBM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당시 브래들리는 보통 사람의 생활과 관련이 있는 제품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데 대해 특히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브래들리는 “당시 많은 직원들은 메인프레임 개발에 참여했으나 대부분 메인프레임을 놓고 ‘이게 내가 개발에 참여한 제품’이라고 내세우기는 어려웠지만 당시 직원들은 모두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신봉했다”며 “당시 많은 직원들이 애플Ⅱ, 라디오 색 컴퓨터 등 개인용 컴퓨터를 갖고 있었으며 나처럼 부품 세트를 사서 직접 조립한 사람도 많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PC 개발에 참여하면서 이제 가족들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게 됐으며 가정에서도 사용 가능하고 사용이 간편하며 개인적으로 쓰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당시 아무도 이 제품이 역사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나 개발자로 선택된 점을 기쁘게 생각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뿐 엄청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당시에 깨닫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IBM은 지난 81∼85년 약 300만대의 PC를 판매해 당초 24만1683대로 예상한 판매량을 훨씬 초과 달성했다. 브래들리는 당시 IBM은 PC시판 한 달만에 이미 목표 판매량을 달성했으며 84년 12월에 생산한 PC만 25만대 이상을 넘었다고 밝혔다.

 당시 상황을 이처럼 생생히 기억하는 IBM 직원은 그리 많지 않다. 브래들리의 연구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노엘 폴웰도 그런 사람이다. 당시 PC 개발팀에서 주기판에 해당하는 시스템 보드의 설계를 맡은 폴웰은 당시 사내소식지에 실린 PC 신개발 소식에 자신의 서명과 다른 직원들의 서명을 담아 이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브래들리는 당시 개발팀에 참여한 엔지니어의 한 사람인 패트리시아 맥휴 역시 현재 플로리다주에 있는 IBM 음성인식 개발팀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뉴욕주 요크타운 하이츠에 있는 IBM 연구소 시스템 담당 부사장을 맡고 있으며 차세대 슈퍼컴퓨터용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개발중인 마크 딘도 당시 PC개발팀에 참여했다.

 딘 부사장은 당시 24세의 젊은 엔지니어로서 그래픽 시스템 개발팀에서 근무하던 중 PC용 컬러 그래픽카드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고 PC개발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새 컴퓨터의 색상 처리 시스템 개발작업을 지원하며 컴퓨터 화면의 도트에 천연색을 입히는 작업과 컬러 도트를 제어하는 기술개발에 참여했다.

 딘 부사장은 “PC 이전에 나온 제품이 낮은 사양의 시스템을 사용했기 때문에 글자 전체를 화면에 띄워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PC용 그래픽 어댑터를 이용해 각 도트를 제어할 수 있고 글자, 얼굴, 차트 등 A에서 Z까지의 알파벳과 1에서 9까지의 숫자만으로는 만들 수 없던 것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주변장치와 호환성을 띤 후속모델의 구조설계 작업에 투입됐다. 지난 97년 딘과 동료 기술자 데니스 묄러는 디스크 드라이브, 비디오 장치, 스피커 등과 같은 플러그인 장치의 전단계인 마이크로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발명인의 전당’에 오르는 영광도 안았다.

 딘 부사장은 “요즘의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더라도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만 ‘이처럼 재미있는 일은 없겠구나’는 생각을 갖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IBM이 탁월한 연구 실적을 올린 연구원 50명에게 부여하는 IBM 엔지니어 최고의 영예인 IBM 펠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잘 만들어진 부품을 조립한 것 밖에는 없다”며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자세를 낮췄다.

<마이클최기자 michael@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