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탄생 20년](3)IBM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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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특약=iBiztoday.com】IBM이 20년 전 PC를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IBM은 PC 시장이 1780억달러 규모로 성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IBM이 PC를 출시키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당시 무명 벤처기업이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com)의 소프트웨어나 인텔(intel.com)의 컴퓨터 칩이 쓰일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PC업계에 잘 알려진 최대 아이러니 중 하나다.

 그러나 IBM의 이 결정은 IBM이 저지른 최대 실수이기도 하다. 결정은 IBM이 했지만 결국 MS와 인텔이 IBM을 물리치고 PC업계를 장악하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PC 탄생 20주년’ 기념행사 역시 PC업계 내 IBM의 위상을 보여준다. 이달 초 새너제이 테크박물관에서 열린 PC 탄생 20주년 기념 행사의 주인공은 IBM이 아니라 MS와 인텔이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대표인 빌 게이츠와 앤디 그로브가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반면 IBM 대표는 아예 참석하지도 않았다. 대신 초기 IBM PC 개발에 참여한 더티 더즌(Dirty Dozen) 12명 중 한 사람이 연설을 했을 뿐이다.

 IBM은 5대 PC 제조업체 중 3위에 머물고 있다. 이제 PC는 MS와 인텔이 만든 표준에 따라 생산되는 제품이 됐다.

 시장조사업체 IDC(idc.com)의 PC부문 애널리스트 로저 케이는 “IBM처럼 위상이 크게 떨어진 업체는 없다”고 지적했다.

 IBM이 실책을 저지른 데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 80년으로 되돌아가보자. IBM은 메인프레임 컴퓨터사업을 주도하는 세계 최대 컴퓨터 생산업체였다. 그러나 IBM 경영진은 실리콘밸리의 애플컴퓨터(apple.com)라는 기상천외한 벤처기업과 취미삼아 독자적으로 개인용 컴퓨터 생산을 시도한 개발자들의 움직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IBM은 시장점유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고자 했다.

 IBM PC 개발에 참여한 데이비드 브래들리는 “당시 IBM의 소형컴퓨터 생산 속도가 지나치게 느렸다”며 “우리는 차세대 기술 동향에 맞춰 나가기를 원했을 뿐 독자적인 생산공정을 개발할 여유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에 따라 IBM은 외부업체와 손잡기로 결정했다. IBM은 인텔이 개발한 8088칩을 IBM PC의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사용키로 했다.

 IBM이 당초 PC 운용체계(OS) 때문에 접촉을 벌인 업체는 게리 킬댈이 이끄는 디지털 리서치였다. 그러나 이 회사는 25만달러를 제시한 IBM의 구매 제의를 거절했다. IBM이 워싱턴주 벨레뷰에 있는 벤처업체 MS를 선택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MS는 SCP-DOS라는 OS가 인텔 8086칩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이 OS를 사들여 MS-DOS로 재빨리 바꿨다.

 IBM이 결정적인 실책을 범한 것은 바로 이때다. IBM은 MS와 인텔에 대해 독점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MS와 인텔은 이에 따라 자사 제품을 IBM뿐 아니라 IBM의 경쟁업체들에 팔 수 있게 됐으며 이는 결국 IBM의 입지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81년 8월 12일 PC가 첫출시됐을 당시 IBM에서 이런 일을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IBM이 내놓은 PC는 종전 제품과 크게 달랐기 때문에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내놓은 PC 중 가장 싼 것은 모니터가 없는 제품으로 1565달러였다. 엄청난 부피 때문에 여러 방이 필요하던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수백만달러에 판매하던 IBM으로서는 그전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던 가격이었다.

 IBM PC는 IBM의 막강한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이지라이터(EasyWriter) 워드프로세서, 최초의 전자 스프레드시트인 비지캘크(VisiCalc), MS 어드벤처 게임 등 여러 개의 프로그램이 설치돼 일반 소매점에서 시판됐다.

 IBM은 출시 후 5년간 24만1683대를 판매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무려 300만대를 팔아치워 당시 PC시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즐거운(?) 지적을 받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유저랜드(userland.com)의 데이브 위너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당시 IBM PC를 대단치 않게 여겼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큰 인기였다”고 말했다.

 IBM PC의 인기가 폭발하자 수백개의 신생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IBM PC와 유사한 제품, PC 주변기기, IBM PC용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판매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IBM PC의 대성공에는 부팅 장치에 해당하는 PC 기본입출력시스템(BIOS)이라는 기술도 한 몫했다. IBM이 원천기술을 보유한 BIOS의 차이성 때문에 IBM의 경쟁사들은 대부분 로터스 스프레드시트 등 당시 인기가 많던 IBM PC용 애플리케이션이 작동하는 PC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com) 출신의 기술자 3명이 세운 컴팩컴퓨터(compaq.com)는 IBM PC의 BIOS 기술을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연구한 결과, IBM PC와 완벽한 호환성을 갖춘 최초의 ‘복제 IBM PC’를 탄생시켰다. BIOS의 비밀이 마침내 풀린 것이다.

 지난 86년까지 복제 IBM PC 제조업체들의 매출 실적은 오히려 IBM보다 많았다. IBM은 이에 맞서 IBM만이 제조·판매 독점권을 갖는 PC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IBM의 PS/2 컴퓨터에 OS/2라는 OS와 마이크로 채널 아키텍처라는 하드웨어 설계를 새로 채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컴팩 공동창업주 겸 퀘스티아미디어(questia.com)의 회장인 로드 캐니온은 “그 같은 시도는 IBM이 PC 시장에서 1위를 탈환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IBM 메인프레임처럼 IBM이 관련 기술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면 신생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MS가 기술혁신을 압살하고 있다고 손가락질하지만 당시 IBM이 시장 우위를 놓치지 않으려고 자행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PC업체들은 대부분 IBM의 새로운 표준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3년 후 IBM은 결국 PS/2의 생산을 중단했고 OS/2 생산도 단계적으로 축소해나갔다.

 그러나 IBM은 포기하지 않고 MS와 인텔의 이른바 ‘윈텔(Wintel)’ 2강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이 중에는 지난 91년 IBM·애플·모토로라가 3자 동맹을 맺어 OS/2 등 다양한 OS에서 실행되는 차세대 칩을 공동생산하는 방안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IBM은 PC 시장에서 1위를 탈환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혁신적인 컴퓨터업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대형화면과 갖가지 첨단기기를 장착한 IBM의 싱크패드 노트북 컴퓨터는 무선컴퓨터 시장에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IBM은 또 소매점 판매를 줄이는 대신 하드웨어와 서비스를 패키지 형태로 팔 수 있는 기업고객에 주력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가격의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IBM이 과연 PC 시장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지 의문을 제기하도 한다.

 <제이슨임기자 jaso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