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통·방 융합과 규제체계 개혁

[벤처포럼]통·방 융합과 규제체계 개혁

 우리나라에서 통신·방송 융합서비스의 활성화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가.

 근본적인 원인은 네트워크산업 규제체계의 후진성에서 기인한다. 규제권한을 둘러싸고 형성돼 있는 이익단체의 집단이기주의에 규제기관의 조직이기주의까지 더해지면서 난마처럼 얽혀 있는 국내 통신·방송산업의 규제생태계가 개선될 조짐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낙후된 규제체계와 이익단체의 집단이기주의에 얽매여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국가는 네트워크산업에 대한 기존 규제체계를 과감히 혁파해 통·방 융합의 속도를 높여 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영국은 지난 2004년 초에 통·방 융합을 촉진하고 규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5개의 통신 및 방송산업 규제기관을 하나로 통합했다. 또 통신·철도·상하수도산업 규제기관의 지배구조를 사기업과 유사하게 개혁해 규제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제고했다. 통신산업 규제기관은 6명의 사외이사와 사장을 포함한 3명의 집행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규제 관련 결정을 내리고, 사장을 비롯한 집행이사가 규제행정조직을 관리하면서 이사회 결정사항을 집행하고 있다. 아울러 사기업과 같이 비상임 이사들이 사장과 집행이사를 임명하도록 해 정치집단과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더욱 강화했다.

 독일은 네트워크산업에 대한 규제제도를 개혁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연방네트워크산업규제기관(FNA:Federal Network Agency)을 2005년 7월에 설립했다. FNA는 통신·방송·우편·전기·가스·철도산업까지 통합해 규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독일은 네트워크산업마다 기술의 차이가 있음에 불구하고 분산돼 있던 네트워크산업 규제체계를 통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와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세계 최초로 단일 네트워크산업 규제체계를 도입한 것이다.

 이처럼 독일이 통신산업 규제기관을 모태로 해 다른 네트워크산업 규제기능을 통합시킨 이유는 통신산업에서 축적된 앞선 네트워크산업 규제경험과 지식을 다른 네트워크산업에 활용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의 규제체계 개혁 사례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네트워크산업 규제기관의 독립성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규제기관은 재정적 독립, 인사상의 독립, 운영의 자율성을 토대로 정치집단 및 행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규제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 됐다. 둘째, 산업의 융합화 추세에 따라 산업의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규제제도가 산업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의회와 정부가 신속하게 규제체계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 셋째, 규제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규제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규제경험과 지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규제기관 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넷째, 시장지배력이 있는 생산자에 비해 조직화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기관의 역할이 강화됐다. 그 결과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추구하는 목표의 첫 번째 항목으로 소비자 보호를 내세우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기가 이제는 어렵지 않다.

 이처럼 외국의 여러 국가는 통합규제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전력·철도는 물론이고 산업 간 융합으로 사실상 차이가 없는 통신과 방송서비스조차 차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방송네트워크도 통신네트워크와 똑같이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정보를 전달한다는 이유만으로 방송사업자는 통신사업자와는 달리 많은 우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의 발 빠른 행보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네트워크산업 규제체계가 얼마나 낙후돼 있고 비효율적이며 반개혁적인지 선명하게 부각된다. 우리 정보통신산업의 우위를 지속하면서 정보통신산업을 새로운 국가경제발전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네트워크산업 규제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권영선 ICU IT경영학부 교수

 yskwon@i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