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술은 술이다

[아침을 열며]술은 술이다

아내가 초조하게 남편을 기다린다. 도쿄 유학을 마친 엘리트지만 돈벌이는커녕 가산만 축내는 남편이다.

 새벽 두 시쯤 남편이 만취가 되어 돌아왔다. 누가 이토록 술을 권했냐고 묻자 남편은 조선사회가 술을 권했고, 현실에서 자신이 할 것은 주정꾼 노릇밖에 없다며 한숨을 쉰다. 못 배운 아내는 이해하지 못할 말이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무지가 답답하다며 다시 집을 나가고, 말없이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내는 탄식한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현진건이 ‘개벽’지에 소설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한 1921년의 조선사회만 그러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 한국사회도 여전히 술을 권하고 있었다.

 1984년 초, 신문사 면접관은 입사 지원자들에게 술을 잘 마시는지를 물었다. 활명수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져 술을 멀리하던 나는 적이 당황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 “지금까지 한번도 취해본 적이 없다”고 중의(重義)적인 대답을 했다.

 다행히 면접관은 술꾼만이 할 수 있는 답변으로 오해해줬다. 하지만 주당(酒黨)으로 몰린 나는 시국을 토론하는 선배들의 술자리마다 불려 다니며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지난 2000년, 언론계를 떠나 기업경영에 참여하게 됐을 때 친구들은 나의 술 실력부터 걱정했다. 영업은 주로 술자리에서 이뤄지는데 과연 비주류(非酒流)가 잘 해내겠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에 일주일에도 서너 차례 바이어에게 술대접하는 사업가가 적지 않았다. 독재정권 하에서는 질식할 것 같은 언론통제가 술을 권하더니만, 21세기 민주사회에서도 왜곡된 영업관행이 술잔을 놓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기야 조선조 선조대에도 조정과 백성을 위해 명나라 사신을 술로 구슬러야 하던 접반관(接伴官)이 있었다고 하니, ‘술 권하는 사회’는 그 역사가 최소한 400년 이상은 되는 셈이다.

 대학이나 직장에서도 여전히 권주(勸酒)는 기승을 부린다. 역시 나름의 명분이 있단다. 매년 어린 학생 여럿의 목숨을 앗아가든 말든 냄새 나는 신발에 술 부어 권하는 신입생 환영회는 대학의 전통과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을 잇기 위한 것이요, 젊은 직원이 위장병으로 고생하든 말든 상사가 술 못 마시는 사원에게 만취를 강요하는 것은 회사발전을 위한 것이란다.

 그런데 이제는 잘못된 음주문화를 고치는 데 법원이 나서야 할 상황이 된 모양이다.

 얼마 전 여직원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한 부서장이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남자직원과 키스를 시키겠다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며 새벽까지 음주를 강요했다고 한다. 조직단합이 명분이었다. 법원은 음주를 강요하는 것은 인격적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며, 상대방이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아무리 명분이 그럴싸하더라도 술은 술일 뿐 사회가 직접 술을 따라주는 것은 아니다.

 술은 음주가들이 내거는 명분을 완성시켜 주지도 않는다. 일제 치하에서도 술 없이 버티는 애국적 지성인이 있었을 것이고, 민주를 희구하는 언론인이 모두 술꾼은 아니었다.

 폭탄주를 마시지 않고서도 회사 성장을 일궈내는 기업인이 주위에는 많다. 애교심과 애사심이 술잔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니 명분이라기보다 ‘몹쓸’ 핑계다.

 18세기 후반 영국 문학을 주도했던 새뮤얼 존슨은 “술은 지금까지 인간이 궁리해낸 것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그렇게 가장 큰 행복을 만들어준다는 술에 다른 핑계가 필요한 까닭이 있을까. 고달픈 세상살이에서 술이라도 마음 편히 마셨으면 한다. 명분이나 변명거리 없이.

◆주태산 맥스무비 사장 joots@maxmovi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