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베트남 성장의 원동력은 8X, 9X 세대

[글로벌리포트]베트남 성장의 원동력은 8X, 9X 세대

 베트남에 대한 지구촌의 시각이 핑크빛 기대에서 회색빛 우려로 변했다. 높은 성장률과 무한한 잠재력에 너도나도 현지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외환위기가 닥쳐와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전 세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반면 8500만여 베트남 국민은 ‘개방’과 ‘혁신’을 통해 선진 베트남을 건설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쳤다. 베트남의 신(新)인류로 불리며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는 ‘8X, 9X’ 세대를 통해 변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베트남의 현재 모습을 전한다. <편집자주>

 “디 우옹 카페 두옥 콩(Di uong caphe duoc khong).”

 베트남어로 “커피 마시러 가자”는 말이다. 마치 선약이라도 한 듯 아침 7시면 베트남 젊은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 중심가에 있는 카페로 모여든다. 전통 차 대신 모닝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새로운 풍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이 같은 신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테 헤 째(The he tre)’ ‘테 헤(The he) 8X, 9X’가 있다. 1980년에서 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베트남 일간 신문인 뚜오이 째(Tuoi Tre)는 ‘8X, 9X’가 베트남 경제의 심장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2008년 6월 기준 베트남 총 인구는 8500만명으로 추정된다. 국제연합인구기금(UNFPA) 기준 베트남 총 인구 중 60%가 만 25세 미만이며, 이 중 33%는 만 15∼25세다. 덕분에 베트남 거리에는 나이 든 전쟁 세대는 거의 보기 어려운 대신, 젊은 이들의 활기로 가득차 있다.

 8X, 9X 세대가 이른 아침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를 살짝 엿들어 보면 베트남의 변화상을 느낄 수 있다. 여느 나라 젊은이들이 벌이는 또래들 간 잡담이 아니다. 이들의 대화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은 사업에 대한 것이다. 어떤 사업을 했는데 얼만큼의 이익을 냈으며, 그 이익금을 가지고 어떤 일을 시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주위에 그 일을 도와 일할 사람이 있는지 대화를 주고 받는다. 친구들이 바로 비즈니스의 파트너이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협조자인 셈이다.

물론 이들이 하는 사업은 큰 규모는 아니다. 직원 수가 총 10명이 안 돼도 할 수 있는 자영업이 주를 이룬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휴대폰(중고 포함) 매매다. 베트남 신세대들이 한국에 못지않게 새로운 기술, 제품에 관심이 높아 최신 휴대폰과 노트북PC 등 전자·IT기기 사업을 선호하는 편이다.

 사업 방식도 독특하다. 카페에서 가장 넒은 자리를 차지고는 가방에서 비닐 포장에 담긴 휴대폰을 꺼낸다. 5∼6개의 휴대폰을 올려 놓고 노트북PC에 휴대폰을 연결해 베트남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운용체계(OS)를 교체하거나 펌웨어(firmware)를 수정한다. 베트남에서 시판되지 않은 애플의 아이폰도 이들의 손을 거치면 거뜬히 통화가 된다.

 이처럼 베트남 젊은이들의 손재주(?)는 뛰어나다. 이들은 소프트웨어나 IT 프로그램 개발 수준이 인도만큼이나 높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IT 분야에 대한 남다른 학구열도 이들의 실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베트남 대학생은 자신의 전공 외에 제2, 3의 전공을 복수로 공부한다. 전공 외의 과목 수강도 자유롭다. IT 전공자지만, 취업후 회계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싶다면 석사과정을 이수하지 않고, 경영학과의 재무·회계 과정을 신청해 야간학교에 다닌다. 이 때문에 대학교를 이미 졸업하고도 2∼3개의 전공을 추가로 공부하는 일이 적지 않다.

호찌민시에 있는 하노이 공대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이공계 대학이다. 캠퍼스 곳곳에는 자신이 만든 로봇 등 메카트로닉스 작품들을 들고 오가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틈난 나면 삼삼오오 모여 테스트를 진행하고 보완점을 토론한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분야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카무라 겐 교수가 이 대학에 공적 개발 원조 지원(ODA) 사업으로 모바일 RFID 등 관련 키트들을 기증한 것도 이 대학의 기술력을 방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8X, 9X 세대들의 높은 학구열과 도전 정신, 새것에 민감한 성향은 베트남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반면에 단점들도 꽤 나타나고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베트남 젊은이들은 월급 액수에 따라 직장을 자주 옮기는 편인다. 또 개인의 능력은 우수하지만, 조직적인 프로젝트 참여에는 익숙하지 않다. 조직에서 요구하는 목적보다는 개인에 관심사에 치우쳐서 본인의 업무에 소홀한 때도 간혹 있다. 대부분이 휴대폰 판매 등 자영업을 복수의 직업(투 잡)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회사 생활에 충실하지 않는 편이다. 전쟁에서 미국을 이겼다는 자존심을 갖고 있어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을 다소 무시하는 성향도 있다.

베트남의 최근 상황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급격한 경제 발전에 힘입어 얻었던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이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 모든 상황을 뚫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침에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오후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컴퓨터 가게의 매상을 확인하고, 저녁에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베트남인들의 천성적인 부지런함과 내적 원동력이 그 이유다. 또 자기 계발과 새로운 도전에 젊음을 불태우는 혁신적인 8X, 9X 세대가 큰 자산이다. 어느 개도국이나 발전하는 과정에서 경제현황, 인플레이션 등 우려되는 문제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베트남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각 국의 원조와 지칠 줄 모르는 8X, 9X 세대의 열정은 베트남의 위기를 한낱 기우로 바꿔 놓을 것이다.

 뀌뇬(베트남)=정기욱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 IT부문 협력요원 processinnovatio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