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 50년, 새로운 50년](31) 컬러TV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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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한국경제의 돌파구, 컬러TV.’

 1980년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은 제2차 오일쇼크로 인해 혼란에 빠졌고, 내수 부진까지 이어지면서 대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10%대의 고성장을 이어가다 10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했다. 이때 등장한 컬러TV는 우리나라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위기의 1980년=3공화국 때 우리나라가 선진국 진입의 상징으로 삼던 말이 ‘수출 100억달러, 1인당 GNP 1000달러’였다. 당시 80년대까지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목표보다 3년이나 이른 1977년에 우리나라는 수출 100억4600만달러, 1인당 GNP 1011달러를 기록했다. 공단의 활성화와 전자산업의 성장으로 이룬 성과였다.

 그러나 기대했던 1980년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오일쇼크의 여파와 정치·사회 불안, 미국·유럽 등의 수입규제 조치 등이 겹치면서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됐다. 당시 경제지표는 전년 대비 마이너스 5.7% 성장이었다. 이전 10년 동안 연평균 10% 이상의 플러스 성장을 거듭해와 충격은 더욱 컸다. 연평균 4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기록하던 전자산업 생산 규모도 13.1% 감소했고, 가전기기의 내수 판매량은 무려 36.6%나 줄었다.

 내수부진은 업계의 자금난을 가중시켜, 당시 전자업계를 대표하던 화신전자·정풍물산·동남전기·오림포스전자·울트라전자 등 중견기업들이 부도를 냈다. 중견기업의 부도는 중소 부품업체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졌다.

 ◇새 희망 ‘컬러TV’=당시 심각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빼든 카드는 ‘컬러TV 방송’이었다. 정부는 1980년 12월 1일부터 컬러TV 방송을 시작한다는 결정을 전격적으로 내렸다.

 1974년 한국나쇼날이 처음 컬러TV 생산을 시작한 지 6년 만이었고, 1977년 금성사와 삼성전자가 대규모 생산에 나선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이미 컬러TV 생산과 공급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과소비 조장과 계층 간 위화감 조성 등을 이유로 컬러TV 방송을 반대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컬러TV 방송 문제가 논의됐고, 전자업체가 적극적으로 로비에 나섰다.

 이후 TV 수상방식을 놓고 미국식인 NTSC방식, 유럽의 PAL방식, 소련 등 일부 국가의 SECAM방식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결국 이미 NTSC 방식으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던 업계의 주장이 통하며, NTSC 방식으로 결정됐다. 정부는 1980년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12월 1일을 기해 NTSC방식으로 컬러TV방송을 시작한다고 결정했다.

 ◇컬러TV의 경제효과=컬러TV 방송은 10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의 충격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전자산업 활성화에 기여한 바가 컸다. 1981년 7월까지 국내에 보급된 컬러TV만 해도 100만대가 넘었다. 이는 1981년 우리나라 전자산업 총생산 규모에 그대로 나타나, 생산 37억9100만달러, 수출 22억1800만달러로 1980년에 비해 각각 33%, 11% 성장했다.

 당시 컬러TV 시장을 주도하던 금성사와 삼성전자는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컬러TV 수상기 신모델 개발과 출시에 온 힘을 쏟았다. 우리나라 전자산업 역사에서 소비자 선호도와 취향에 따라 가전 제품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금성사와 삼성전자는 전자회사로서 사활을 컬러TV 시판 경쟁에 걸고, 1980년을 전후한 3∼4년 동안 각각 수십종의 신모델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금성사는 1980년의 ‘하이테크’ 시리즈를 시작으로 1982년까지 모두 80여종의 신 모델을 선보였다. 신 모델들에는 당시로서는 신선한 기능들을 갖추고 있었다. 금성사는 전자시계를 내장해 예약이 가능한 ‘컴퓨터 기능’을 갖춘 제품, 20인치 컬러브라운관에 5인치 흑백브라운관을 함께 내장한 2화면(POP:Picture Out Picture) 방식TV, 45인치 스크린을 채택한 프로젝션TV, 음성인식TV, 리모컨TV 등을 잇따라 출시했다.

 삼성전자도 1981년 ‘이코노 빅’ 시리즈를 연달아 내놓으며 금성사의 신모델에 대응했다. 삼성전자는 1983년까지 약 70종의 신모델들을 출시했다. 삼성전자는 이코노 빅 시리즈를 통해 부가기능보다 절전기능을 부각시켰다. 이코노 빅 시리즈는 경쟁제품에 비해 소비전력을 44% 절감할 수 있다는 광고를 했으며, 이 효과로 제품은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국산TV 시장은 삼성전자가 이코노 빅 시리즈를 단종하고, 1983년 본격적인 고부가가치 모델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음성다중TV인 ‘엑설런트’를 출시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컬러TV가 몰고온 ‘색채 혁명’

 1980년 12월 1일, KBS는 오전 10시 30분 ‘수출의 날’ 기념식을 처음 천연색으로 방송했다. 시험방송으로 시작한 컬러TV 방송은 이날부터 평일 세 차례 실시했으며, 12월 말에는 각 방송사 프로그램 80% 이상이 컬러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컬러TV 방송은 세계에서 81번째로 실시된 것으로, 북한보다도 6년이나 늦었다.

 비록 늦었지만 컬러TV 방송은 당시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왔다. 처음 컬러TV 방송이 시작되자 흑백화면에 길들어 있던 시청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가히 색채의 혁명이라고 할 정도였다.

 있는 그대로의 색상을 TV화면에 고스란히 전달하는 컬러TV 방송은 사회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컬러TV 방송으로 집에서 컬러영화를 볼 수 있게 돼 극장이 망할 것이라는 성급한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컬러TV방송으로 인해 가장 먼저 찾아온 효과는 수상기 보급과 수출로 인한 전자산업 활성화였다. ‘컬러TV를 샀느냐’는 말이 새로운 인사로 등장했을 정도였다.

 컬러TV의 영향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전자산업을 넘어 생활 전반에 컬러화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며, 생산과 소비 모두를 변화시켰다.

 TV와 광고에 등장하는 상품이나 출연자의 옷이 천연색 화면에 맞게 화려해지자, 일반 국민의 생활에도 컬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컬러화는 소비패턴의 고급화와 다양화로 연결됐다. 제품에 있어 컬러와 디자인이 핵심요소로 떠오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컬러화 효과가 가장 큰 분야는 식품·화장품·패션 등이었다. 컬러광고는 이들 상품에 대한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기업들도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신상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러한 컬러화 바람을 타고 1980년 한때 위기를 맞았던 우리나라 경제는 내수부진을 극복하고, 다시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