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무늬만 그린’ 잘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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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라인] `무늬만 그린’ 잘 살펴야

 묻지마 투자가 한창일 때가 있었다. 회사 이름에 닷(.)이나 컴, 비즈만 들어가도 투자가치가 있는 유망한 기업으로 간주하던 때다. 똘똘한 사업계획서 하나로 수십억원의 자금을 끌어오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어쩌다 신문에 유망한 닷컴 벤처로 소개되기라도 하면 투자유치는 더 쉬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천사 같은 엔젤투자자들도 많았고 심지어는 가정 주부까지 가세해 닷컴 벤처에 쌈짓돈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기업의 가능성을 보고 아낌없이 투자하는 엔젤투자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멀쩡한 가정 주부까지 투자자로 나설 정도였으니 온 나라가 닷컴으로 들끓어 거품이 생길만도 했다.

 정확히 10년 만이다. 당시 닷컴 붐이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면 10년이 지난 지금은 ‘녹색 성장’과 ‘그린 열풍’이 당시를 재연한다. 10년 전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막 벗어난 시점이었다면 지금은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한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는 시점이다. 억지로 갖다 붙이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1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닮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보다못해 한마디 했다. ‘요즘 녹색성장을 많이 얘기하다 보니 녹색하고 관계없는 데도 녹색을 붙이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IT업계 관계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한 이야기인데 이 말을 직간접적으로 들은 기업 경영자 중 일부는 가슴이 뜨끔했을 터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는 공시를 들여다 보면 녹색이나 그린 관련 분야를 사업목적으로 추가한 기업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공시에 녹색사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한 시점을 전후해 해당기업의 주가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어떤 기업은 공시하기 전에 상승세를 띠다가 공시와 동시에 하락세로 전락하는가 하면, 어떤 기업은 공시를 전후해 주가가 요동치기도 한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가뜩이나 침체해 있는 증시에서 ‘녹색 코드’를 주가 관리 도구나 ‘작전’의 도구로 활용하는 부류도 있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많은 기업들이 그린 혁명을 하겠다고 덤벼들고 있지만 지금은 혁명을 하는 게 아니라 파티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미국·일본·영국 등 주요 국가가 그린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카드로 지목하고 집중지원하겠다고 공언했고 기업들도 그린을 올해 최대의 경영목표로 설정했지만 자칫 무늬만 그린을 표방하는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꼬집은 말이다.

 10년 전 넘쳐나던 ‘닷컴기업’ ‘e비즈니스기업’ ‘인터넷기업’은 언제 그랬느냐 싶을 정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회사 자체가 없어진 경우도 많지만 거대기업으로 승승장구하는 대기업들도 이젠 더 이상 ‘e비즈니스 기업’이나 ‘인터넷기업’이라는 수식을 쓰지 않는다. 어느새 인터넷 냄새가 나는 ‘닷컴’이나 ‘닷넷’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조용히 다른 상호를 등록하는 기업도 부쩍 늘었다. 진정한 인터넷 시대에 정작 인터넷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진정한 그린 시대에서 진짜 투자해야 할 기업은 그린이나 녹색이라는 수식어를 드러내놓지 않고도 묵묵히 그린을 실천하는 기업이다.주문정·그린오션팀장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