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아닌가벼` 외치는 정부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데스크라인] `아닌가벼` 외치는 정부

 “어? 여기가 아닌가벼!”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정벌하기 위해 “나를 따르라”고 큰소리치며 눈 덮인 알프스를 오르더니 정작 정상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오래된 우스갯소리가 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던 영웅의 머쓱한 얼굴과 기진맥진한 병사들의 얼굴이 오버랩돼 폭소를 자아내곤 했다. 무모한 리더십이 사회 전체에 얼마나 큰 피해를 안겨줄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새해가 밝았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뜬금없이 ‘나폴레옹 우화’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새해가 되면 전자세금계산서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새해를 꼭 일주일을 남겨두고 거짓말처럼 “아직 아닌가벼”라고 말했다. 전자세금계산서 의무화를 1년간 유예하겠다는 것이었다.

 국세청은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새해 전자세금계산서 의무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전자세금계산서를 쓰지 않으면 가산세를 물어야 한다는 은근한 ‘협박’까지 곁들였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뒤늦게 벼락치기 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업체들이 아우성쳤다. 반면에 전자세금계산서 솔루션 업체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특수를 놓칠세라 사람을 새로 뽑고, 목돈을 들여 값비싼 장비도 장만했다.

 그런데 제도 시행을 딱 일주일 앞두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마라톤 42.195㎞ 완주를 고작 1㎞ 남겨둔 지점에서 대회 자체가 무효라고 통보받은 느낌이랄까. 이 기막힌 장난에 중소 전자세금계산서 솔루션 업체들은 생존권마저 위협받게 됐다. 지금까지 꿈도 못꾸던 TV 광고까지 펼치며 홍보 마케팅에 거금을 쏟아부었지만,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됐다. 전자세금계산서 시스템을 이미 구축한 ‘모범업체’들도 피해는 막대하다. 협력업체들이 종이 세금계산서를 고수하면 온오프라인 두 가지 방식으로 계산서를 발행해야 할 판이다.

 사정이 이쯤되자 정부 일각에서는 자신들도 국회에 발목이 잡힌 피해자라고 하소연한다. 전자세금계산서 의무화 유예를 결정한 곳은 국회라는 논리다. 그렇지만 의무화를 유예한 근본적인 이유를 빼놓은, 그야말로 변명에 불과하다. 국회가 의무화를 연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의 준비 부족으로 제도가 시행되면 대혼란이 예고된다는 것이었다. 국세청이 전자세금계산서 발행 시스템을 늑장 구축하거나, 홍보를 게을리해 사업자들의 준비가 늦어진 것은 이미 언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정부는 새해 화두로 G20 정상회의 개최국에 걸맞게 국격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한 나라의 지속적 발전은 사회의 신뢰관계에 놓여 있고, 그 예로 선진국은 모두 ‘고(高)신뢰 사회’”라고 진단했다. 새해부터 정부의 신뢰가 추락한 해프닝을 다시 꺼내는 일이 썩 유쾌하지 않다. 더욱이 G20 행사 등 기대도 한껏 고조된 마당이다. 하지만 ‘반면교사’라고 했다. 1년 뒤 정부가 다시 거짓말쟁이가 되는 악몽은 떠올리는 것은 더욱 끔찍하다. G20의 성공적인 개최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정부가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새해엔 미리미리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