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대항해 시대] <1부>한국 경제, 벤처가 희망이다 (4)벤처자금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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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은 실과 바늘 관계로 표현된다.

 한 곳이 흔들리면 다른 한 곳도 흔들리고, 반대로 한 곳이 흥하면 다른 곳 역시 크게 활기를 띤다. 둘의 연결고리는 ‘고위험고수익(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추구’로 요약된다.

 벤처기업은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시장을 개척한다. 말 그대로 없는 기술로 없는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그런 곳이다. 그런 기업이 일반 시중 금융권의 자금을 끌어쓰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은행 입장에서는 벤처기업에 대출했을 때 고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데 비해 수익성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곳이 벤처캐피털이다. 벤처의 잠재 기술을 인정하고 가능성을 믿고 투자하는 곳이다. 벤처가 성공하면 대신 높은 수익을 확보하는 그런 비즈니스를 펼친다.

 올해 정부는 ‘제2의 벤처 붐’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 뒤에는 벤처캐피털이 있다. 현재 한국 벤처캐피털 시장은 1990년대 후반에서부터 2000년 초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결성한 벤처펀드는 총 74개에 1조4163억원에 달한다. 전년도인 2008년의 1조918억원에 비해 30%가 늘어난 것으로 2000년의 1조4341억원과 큰 차이가 없다. 국내 연도별 벤처펀드 결성 규모를 보면 2001년 벤처 버블이 제거되면서 7910억원으로 1조원 벽이 무너진 이후 2008년 1조918억원 결성할 때까지 한 차례도 1조원대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만큼 지난해 막대한 펀드가 결성된 셈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의 투자실적이다. 2000년 당시 신규투자는 2조211억원에 달했다. 이미 결성한 펀드에 당해 1조4000억원대 펀드가 결성된 영향이다. 9년 후인 지난해는 1조4000억원대 펀드가 결성됐으나 투자규모는 8671억원에 불과했다. 그 전해인 2008년에도 1조원 이상의 벤처펀드가 결성됐음에도 투자실적은 7247억원에 그쳤다. 2년 연속 펀드 결성규모에 비해 투자규모는 극히 미진했다.

 수치만 봤을 때 지난 2년간 2조5000억원 이상의 펀드가 결성됐으나 1조5000억원 정도만이 집행됐다. 벤처기업에 투입돼야 할 자금 상당분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은행 등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이는 올해 벤처 시장에 나올 것이 확실시된다. 벤처펀드는 대부분 7년(일부 5년)간 존속한다. 그리고 자금 회수(exit)를 감안할 때 결성 당해와 차기연도 늦어도 3년 내에는 투자를 집행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 벤처펀드가 2000년에 버금갈 정도로 결성이 활기를 띠었지만 벤처캐피털 본토인 미국에서는 극도의 침체를 보였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톰슨로이터 등의 자료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벤처펀드 결성 규모는 152억2000만달러로 전년도인 2008년의 285억7200만달러에 비해 46.7% 축소됐다. 미국에서 벤처펀드 결성이 한창이었던 2006년(319억달러)과 2007년(361억달러) 각각 300억달러를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절반만이 결성된 셈이다.

 이는 2008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금융위기 여파다. 미국 벤처펀드 시장은 순전히 민간에 의존한다. 에인절투자자 등 민간과 기관 자금이 주도를 한다. 최근 1년여 금융위기와 함께 이들의 자금이 대거 안정자산으로 쏠리면서 고위험을 추구하는 벤처캐피털 시장은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다. 미국 벤처시장이 당분간 침체국면에 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 벤처캐피털 시장도 물론 금융위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다만 정부에서 과감한 지원이 민간과 기관을 흔들었고 그 영향으로 막대한 펀드가 결성됐다. 시중에 풀린 자금을 끌어모으고 무엇보다 미래 성장동력을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며 정부가 모태펀드를 통해 벤처펀드 결성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모태펀드가 벤처펀드에 출자한 규모는 3904억원으로 2007년(1799억원), 2008년(1853억원)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지난해 결성된 벤처펀드 가운데 모태펀드 비중은 84.6%까지 상승했다. 펀드 10개 가운데 8개 이상이 모태펀드 지원으로 결성된 것이다.

 모태펀드 지원으로 결성된 펀드는 정책적 목표를 부여받는다. 예컨대 초기 벤처기업을 위한 펀드, 신성장동력 산업 전용 펀드 등이다. 정부가 지원 필요성이 높은 분야에 대해 절반 또는 일정비중 이상을 의무 투자하도록 약정했다. 이들 분야에 자금이 대거 투자되고 이는 관련 산업 육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다.

 올해 벤처캐피털 업계의 투자 규모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하다는 분석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국내 100개 벤처캐피털 가운데 90곳을 대상으로 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올해 투자규모는 1조2251억원으로 나타났다. 벤처 버블이 제거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벤처캐피털 업체 투자 규모가 1조원을 돌파한 사례는 없다. 최근 2년간 투자가 많이 이뤄지지 않은데다가 올해도 2000억원이라는 막대한 모태펀드가 집행된다. 당연히 우량 벤처기업에 대거 자금이 지원되는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상무는 “지난해 모태펀드 출자 확대로 2000년 이후 최대 펀드 결성실적을 기록했다”며 “풍부한 재원 확보와 투자환경 개선으로 올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투자집행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전문가들은 자금이 돌면 산업은 자연스럽게 살아난다고 말한다. 최근 글로벌 경기회복기에 맞춰 벤처기업들은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지금 9년 만에 최대 자금을 확보한 벤처캐피털 업계는 전 세계 시장으로 도약을 준비 중인 이들 벤처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리고 그 자금 지원이 본격화하는 순간 한국 제2의 벤처 붐은 본격 개화할 것이다.

 ‘초기 투자’ 그리고 ‘코스닥.’

 한국 벤처캐피털산업이 선순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두 가지 해결 과제다. 한국 벤처캐피털 산업은 벤처 붐이 제거되면서 상장을 앞둔 후기(프리 IPO) 벤처기업 투자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벤처캐피털이 후기 벤처에 투자하는 이유는 하나다. 리스크(위험)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고위험 고수익’보다는 ‘저위험 저수익’을 택한다.

 과거 벤처 붐 시절 고위험 투자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고 그 여파가 아직까지 미치고 있다. 그 영향으로 벤처캐피털 업계는 내부 투자결정 기준을 대폭 ‘안정’ 지향으로 강화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초기(설립 3년 이내) 벤처기업 투자비중은 28.6%에 불과하다. 2002년의 초기기업 비중은 63.5%였다. 2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에 후기기업(설립 8년 이상) 비중은 2002년 8.5%에서 지난해 41.4%로 급등했다.

 이는 여러 부작용을 양산한다. 대표적으로 초기 벤처기업 탄생을 가로막는다. 벤처기업은 벤처캐피털 자금이 끊기면 존속이 불가능하다. 물론 신생 벤처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벤처캐피털 업계도 치명적이다. 초기 벤처기업이 등장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투자처가 사라진다.

 다행히 최근 자성 목소리가 벤처캐피털 업계에 확산되고 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규정대로라면 초기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여의치 않다고 보고, 최고 3억원까지는 내부 절차(투자심의위원회)를 밟지 않고 투자하도록 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사장은 “초기 벤처가 없으면 중기·후기 벤처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확실한 사업 계획이 있고, CEO가 믿을 만하며, CEO가 회사와 기술 성장성에 확신이 있으면 믿고 투자하라고 주문한다”고 설명했다.

 최수규 중기청 창업벤처국장은 “앞으로는 모태펀드 지원으로 결성한 벤처펀드의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이들 펀드 자금이 창업과 초기 벤처기업에 유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코스닥도 벤처캐피털 업계에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 벤처캐피털의 자금회수(exit) 시장은 사실상 코스닥 하나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국만 해도 벤처캐피털 업계의 자금회수는 M&A가 70∼80%를 차지하고 상장(IPO)은 20∼30%대에 불과하다. 주식시장 호·불황에 따라 M&A시장 적극 활용이 가능하다.

 반면에 우리나라 벤처캐피털 업계의 M&A를 거친 자금회수는 10%대에 불과하다. 사실상 IPO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닥이 추락하면 투자한 벤처기업의 상장의욕이 꺾이고 이는 벤처캐피털의 자금회수 한계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나타낸다. 코스닥을 살리는 것은 업계가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결국, 벤처캐피털 업계가 벤처 업계 그리고 정부와 함께 국내에도 M&A가 활기를 띠도록 중장기적으로 제도 개선 및 문화 형성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