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망자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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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월드`의 홀로그램 공연 모습
<`아바월드`의 홀로그램 공연 모습>

 유명한 스타는 죽어서도 팬들의 기억 속에 길이 남는다. 액션영화의 전설인 이소룡,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신의 목소리를 지녔던 프레디 머큐리 등은 전 세계 마니아들에게 여전히 우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만약 수십년 전에 세상을 떠난 스타들이 멀쩡하게 되살아나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건 가정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요즘 런던에서는 세계를 열광시켰던 스웨덴의 4인조 팝그룹, 아바(ABBA)를 기념하는 박물관 겸 테마파크가 개장해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그룹 아바는 지난 1970년대 ‘댄싱퀸’ ‘워털루’ 등을 히트시켜 무려 4억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팝의 전설이다. 아바의 주옥 같은 노래들은 뮤지컬과 영화 ‘맘마미아’의 흥행에 힘입어 수십년이 흘렀지만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런던에 문을 연 ‘아바월드’는 왕년의 스타들이 소장했던 물품을 전시하는 기존 박물관과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관객들은 25개 전시실을 돌면서 아바의 이야기를 담은 추억과 감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아바월드의 백미는 팬들이 직접 공연장에 올라가 아바 멤버들의 홀로그램 사이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첨단 홀로그래픽 기술로 재현된 아바의 3차원 캐릭터는 마치 진짜 가수처럼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면서(그렇게 보인다) 그룹 아바의 전설이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각인시킨다. 이 곳을 둘러본 아바 팬들은 한결같이 “굉장하다” “꿈을 이룬 것 같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테마파크 측은 홀로그램 공연에서 1970년대 아바의 공연을 똑같이 재현하기보다는 일종의 만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컨셉트를 잡았다. 아바 멤버들이 지금도 생존하는 상황에서 굳이 리얼리티를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발달된 CG기술을 투입하면 놀라울 정도의 생생한 아바 공연을 3차원 공간에서 영원히 재현할 수 있다. 또 홀로그램 캐릭터에 인공지능을 덧붙이면 팬들과 즉석에서 의사소통도 가능할 전망이다. “서울에서 오신 김○○씨, 저희 아바와 함께 댄싱퀸을 불러보시죠. 괜찮겠어요?”

 

 아바월드의 사례는 향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유명 스타의 연예활동이 고인이 된 후에도 얼마든지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은 영화 ‘아바타’에서 실제 배우의 감정을 가상 캐릭터에 불어넣는 이모션 캡처기술이 대중화됨에 따라 수년 내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이모션 캡처는 영화계에서 실제 배우에게 센서를 부착해 몸동작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변환시키는 모션캡처기술이 한 단계 더 발달된 것이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 여전사 네이티리를 비롯한 나비족 캐릭터들은 사람과 똑같은 눈빛 연기를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의 골룸과 비교하면 확실히 아바타는 어디까지가 진짜 연기고 어디서부터가 CG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감성연기를 해낸다.

 아바타가 기존 영화와 다른 점은 배우 얼굴 180여지점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표정변화를 캡처해서 캐릭터상에서 후보정하는 작업을 해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초소형 카메라 촬영장비를 배우의 머리에 씌워서 360도 촬영하고 세트장에는 250여대의 카메라가 모든 각도에서 배우의 움직임을 녹화했다.

 아바타 캐릭터들이 얼굴 근육과 눈동자의 움직임, 속눈썹의 미세한 떨림까지 생생하게 재현해낸 비결이다.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가 주인공 제이크와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이 실제 연기와 진배없는 것도 이모션 캡쳐 덕분이다.

 아바타에서 실용화된 이모션 캡처기술은 3D, 홀로그램 기술과 결합하면서 죽은 사람도 거뜬히 되살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됐다. 현재 살아있는 스타는 물론이고 수십년 전에 죽은 연예인이라 해도 고해상도의 영상자료만 충분하면 어렵지 않게 살아있는 캐릭터의 형태로 팬들과 만날 수 있다.

 우선 생전에 찍은 수많은 공연영상을 활용해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육성까지 캡처한 다음 컴퓨터에 입력한다. 이 같은 반복작업으로 섬뜩할 정도의 사실성을 가진 홀로그래픽 입체화면이 무대에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가상으로 재현하기는 훨씬 쉽다. 성우가 비슷한 톤으로 녹음한 다음 컴퓨터SW에서 죽은 스타의 독특한 음성파형을 덧씌우면 감쪽같이 목소리가 재현된다.

 오래전에 죽은 가수가 초대형 콘서트를 다시 열고 팬들에게 반갑다고 인사하고 2010년도 신곡에 맞춰 새로운 안무를 선보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전설 속의 스타를 되살려내는 비즈니스는 잠재력이 매우 크지만 저작권과 관련해 예상치 못한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CG로 만들어낸 스타의 캐릭터가 예전의 공연, 연기를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창작을 시도해도 되느냐는 질문이 등장할 수 있다.

 배우 이소룡은 생전에 용쟁호투, 사망유희 등 영화 5편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 세계에 두터운 마니아층이 있다. 그동안 이소룡의 미완성 유작을 완성하거나 이소룡의 대역을 출연시킨 영화제작 시도가 계속됐다. 신씨네는 지난 2004년 CG로 이소룡을 부활시키는 액션영화 ‘드래곤 워리어’의 제작을 추진하다가 끝내 실패했다. 만국 공통의 아이콘인 이소룡이 부활하는 영화를 만들면 대박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초상권과 저작권을 관리하던 이소룡의 딸은 수십 편의 시나리오를 보고도 끝내 영화제작을 거부했다. 기존 이소룡의 이미지가 새로운 영화캐릭터 등장으로 망가질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영생의 꿈=이모션 캡처와 홀로그램 영상을 이용해 영원히 살아있는 캐릭터로 현존하고 싶은 욕망은 거대한 디지털 시장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

 당신이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를 이용해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욕구나 홀로그램 카메라 앞에서 불멸을 꿈꾸는 인기 연예인의 심리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국내의 한 홀로그램 전문업체는 요즘 흥미로운 제안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 대형교회를 설립한 목사의 설교장면, 유명 영어학원을 설립한 원장의 열정적 강의모습을 입체 홀로그램 영상으로 남겨달라는 주문이다. 틀에 박힌 자서전이나 기념사진, 2D 동영상이 아니라 홀로그램 입체영상으로 창업자의 카리스마와 영향력을 사후에도 길이 남기려는 시도다.

 머지않아 홀로그램 캐릭터는 박제된 형태가 아니라 현실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갖게 될 것이다. 아바타에서 선보인 첨단 영상기술이 디지털 영생을 추구하는 대중의 욕망과 만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수십년 전에 사망한 전설적 스타들을 살려내 TV광고, 토크쇼에 출연시키는 일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추모집회에서 홀로그램으로 되살아나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눌지도 모른다. 망자가 저승으로 가지 않고 디지털 유령으로 남아 이승세계를 끊임없이 떠도는 셈이다.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미래사회에서 당신의 경쟁자는 직장 선후배, 라이벌 회사의 직원들 외에 이미 죽은 사람도 포함될 수도 있다. 연예계 신인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마이클 잭슨, 프레디 머큐리와 같은 스타들과 경쟁하는 부담까지 지게 될 것이다.

 요즘 TV를 켜면 노인층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는 상조회사 광고가 도배를 하고 있다. 21세기의 상조서비스는 단순한 장례도우미의 역할을 넘어 고인의 영향력을 사후에도 유지하는 디지털 유산을 남기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한다. 상상해보자. 명절날 제사상에서 형식적으로 절하기보다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캐릭터가 직접 해주시는 덕담을 후손들이 듣는다면 훨씬 가족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망자의 캐릭터가 산 사람과 소통하고 생전의 영향력을 일정부분 유지하는 미래 시나리오는 마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는 고사를 연상케 한다. 종교계의 입장에선 이승과 저승의 관념적 경계가 모호해지는 사회트렌드의 변화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평생 무소유를 강조한 법정 스님이 이러한 세태를 본다면 부질없는 짓이라 호통을 치시겠지만 이승을 헤매는 디지털 유령의 수는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