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미래사회] <22> 피난사회의 대안은?

 KBS2 TV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탤런트 이미숙이 연기하는 송강숙이다. 강숙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이 불법이든, 편법이든, 속임수든 가리지 않는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약자에게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에서 강숙은 생존하기 위해 ‘뭐 뜯어먹을 것’이 있으면 관계를 맺고, 없으면 가차 없이 자리를 뜬다. 드라마는 이런 강숙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지만, 이런 변화는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하다. 드라마 바깥 세상은 그대로기에. 이런 점에서 강숙의 캐릭터는 한국 사회에 한 가지 숙제를 내준다.

 1960년대 일찍이 미래학에 눈뜬, 전 경제부총리 이한빈 선생은 한국이 지향해야 할 사회를 ‘발전사회’로 정했다. 이 사회를 이끌어나갈 인재는 사회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반대되는 인물은 도피형인데, 변화에 소극적이면서 과거지향적이다. 도피형은 회상(回想)에 젖어 있으며, 현재 벌어지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미래에 대해선 공포감을 갖고 있다. 이한빈은 이런 유형은 특히 피난민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피난민에게 미래는 없는 것이다.

 사회학자 김동춘은 한국사회를 피난사회라고 정의한다. 그의 책 ‘전쟁과 사회’에서 한국전쟁기의 피란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만성적인 정치사회 현상으로 구조화됐다”고 주장한다. 피난사회에서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를 하게 되고, 이익에 따라 일시적인 관계가 형성되며, 어떤 질서와 규칙 속에 살아가기보다는 당장의 이익 추구와 목숨 보전에 여념이 없다.

 인류학자 조한혜정도 피난사회를 분석한 적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는 근대 100년을 살면서 근대적 체험을 한 것이라기보다 피난민적 체험을 하며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단기적 안목을 가진 거간꾼을 양산한 반면에 길게 내다보면서 거간꾼을 견제하려는 세력을 길러내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생존의 욕구만이 강렬한 피난민 사회에선 도둑질을 해서라도 양식을 구해오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강숙은 분명 피난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드라마 속 강숙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샐러리맨들에게 삶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전쟁’이라고 털어놓을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아직도 피난사회에 사는 셈이다. 한국사회의 미래 모습을 그려볼 때, 풀어야 할 숙제는 피난사회의 대안을 찾는 것이다. 피난사회의 대안은 눈앞의 적을 찾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실용적이고, 실현가능성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내재된 피난민적 정서를 찾는 것이 먼저다.

 박성원 하와이미래학연구소 연구원 seongwon@hawaii.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