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디엄] <8> 키보드 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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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무대로 펼쳐지는 네티즌 간의 격렬한 싸움을 일컫는 말. 논쟁 당사자들이 현실에서 직접 만나지 않고 키보드로 입력하는 글로만 싸움을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줄여서 `키배`라고도 한다. 동사형은 `키배 뜨다`. 키보드 배틀에 익숙하고 자주 즐기는 사람은 `키보드 워리어`라고 한다.

키보드 배틀은 외형상으로는 논리와 지식을 앞세운 날카로운 토론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감정을 도발해 약을 올리고 상대 말엔 귀를 막은 채 서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펼치는 형태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과 우리 외교의 대처 방안`에서부터 `태권V와 건담 중 뭐가 더 센가`에 이르기까지 상상 가능한 모든 주제로 키배는 가능하다. 다만 참여자에게 정말 중요한 주제로 키배가 벌어지는 일은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배가 주로 벌어지는 곳으로는 네이버 · 다음 등 포털 뉴스 댓글란이나 디씨인사이드 · 루리웹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 블로그 등을 들 수 있다.

처음엔 진지하고 점잖게 논쟁이 시작됐더라도 댓글과 반박이 이어지면서 본래 논지는 사라지고 상대방을 밟아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만 남게 되면서 키보드 배틀은 본격화된다. 한번 시작된 키배는 말꼬리 잡기와 빈정대기, 난독증이 겹치며 격렬하게 타오르다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사그라든다.

키보드 배틀은 상대방의 작은 실수를 놓치지 않고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적절한 표현의 공격으로 상대의 평정심을 잃게 하며 논쟁을 눈팅하는 다른 네티즌들의 동의를 구해내는 고도의 지적 행위이다. 하지만 결국 키배에서 승리하는 것은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다.

전문적인 키보드 워리어가 아닌 한 키보드 배틀에 말려들었을 때엔 일찌감치 PC를 끌 것이 권장된다. 하지만 관심 분야에서 자기 지식과 자존심이 무시당했다고 느껴 키배에 참여할 때엔 고도의 몰입과 강력한 아드레날린 분비가 일어나 키배를 털고 나오지 못 하는 중독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심야 시간엔 청소년들의 키배를 강제 차단하는 셧다운 규정을 네티즌보호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 생활 속 한 마디

A: 사내 게시판에서 구내식당 메뉴 문제로 논쟁이 붙었는데 총무팀 홍 과장이 모든 논란을 제압했어.

B: 평소엔 얌전한데 키보드 배틀엔 강하네요.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