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디엄] <9> 정신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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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승리는 인터넷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한쪽 당사자가 타당한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하는 행위. 논쟁에서 밀린 것이 명확함에도 전혀 설득력 없는 근거를 제시하거나 상대방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며 자신이 승리했다고 우기는 것을 말한다. 맞건 틀리건 무조건 자기 주장을 반복하며 상대방을 이해력 떨어지는 난독증 환자로 몰거나 작은 꼬투리를 끝없이 확대하는 방법 등을 취한다. 한 편이 지겨워 혹은 더러워 논쟁을 중단하면 상대편은 승리를 선언한다.

건전한 토론법이라 할 순 없지만 소모적 `키보드 배틀`(본지 2010년 9월 3일자 27면 참조)을 종식시키는 방법으로서의 가치는 있다. 키보드 배틀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회의론도 있다.

문제가 있는 총리 · 장관 후보들을 지명해 놓고 이들이 청문회에서 낙마하자 “화가 복이 되는 기회로 삼자,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한 단계 격이 높은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정부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정신 승리의 그림자를 본다.

6.2 지방선거 승리 후 `국민의 심판`이라며 환호했던 민주당이 7월 재보궐선거 패배 후엔 “국민이 4대강 추진 등 정권의 오만과 독선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논평한 것 역시 정신 승리의 자세로 선거 결과를 해석한 것이라 하겠다.

정신 승리는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주인공 아큐는 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모자란 인물. 현실에 굴종하지만 내면으론 현실을 외면한 자기 합리화에 빠지는 이중적 캐릭터이다. 동네 지주 영감에게 뺨을 맞은 후에 “이놈의 세상, 아비뻘 되는 사람을 치다니… 내가 참아야지”라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식이다.

정신 승리는 의견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며 자신의 평소 생각을 강화시켜 가는 인터넷의 속성을 반영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자신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논쟁의 기회는 무한정인 인터넷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



* 생활 속 한마디

A:3분기엔 시장점유율이 상승하고 경쟁사 고객도 새롭게 확보하는 등 성과가 컸습니다.

B:전체 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경쟁사들은 신사업에 주력하는 상황에서 그런 발언은 정신 승리 아닌가요?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