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디엄] <13>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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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나 학업으로 사회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 채 인터넷 · 게임 등 온라인세계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형용사형은 `잉여롭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을 겪으며 PC 앞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청년층의 현실을 반영한다. 걸그룹 멤버의 과거 사진을 찾아 현재와 비교하거나 하루 종일 게임에 푹 빠져 지내는 것, 쓸데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며 무의미하면서도 집요한 키보드 배틀을 지속하는 일 등이 잉여롭게 여겨지는 대표적인 행위다.

잉여로운 행동을 하는 정도를 `잉여력`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잉여력 폭발해 인터넷에서 무한도전 1회부터 지난주 방송까지 한 번에 봤어`와 같은 용례를 들 수 있다.

본래 `잉여`는 `쓰고 남은 나머지`를 뜻하는 말로 경제 용어로 쓰일 때엔 부정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에게 쓰이면 사회에 적응 못하는 무기력한 사람을 뜻한다.

`잉여` 인간에 대한 고찰은 산업화 초기부터 세계 문학에서 종종 다뤄왔던 주제다. 손창섭은 1958년 발표한 단편 `잉여인간`에서 전후의 무기력한 인간 군상을 묘사했다. 오늘날 재등장한 `잉여`란 표현은 무기력함이란 특징을 공유하되 활동 무대가 디지털로 옮겨진 것이 특징이다.

한편 인터넷 세계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단어는 몇 차례 변화를 겪어왔다. 2000년대 초반 초고속인터넷의 본격적인 보급과 함께 `폐인`이란 말이 유행했다. 폐인은 인터넷과 게임에 빠져 생활에 지장을 겪는 사람들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비난하는 의미로 많이 쓰였지만 새롭게 등장한 정보 문명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 사이의 동질감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했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깊이 좋아하고 열중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오덕후`란 표현이 등장했다. `오덕후`는 인터넷에서 가능해진 정보 접근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다양한 취향을 드러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잉여`는 이들과 많은 점을 공유하면서 무기력과 좌절의 느낌을 더한 것이 차이점이다.



* 생활 속 한 마디

A: 이 자료에는 1990년대 이후 데뷔한 우리나라 모든 걸그룹 멤버와 그들의 노래가 정리돼 있어요.

B: 오, 왠지 상당히 잉여로우면서도 유용한 자료군요!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