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콘텐츠심의 손 떼라

 여성가족부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노랫말에 ‘술’ 등 들어간 대중가요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했다가 연일 조롱과 비판을 받는다. 지난주엔 여성부 조치가 부당하다는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나왔다. 여성부는 심의 규정을 고칠 때까지 음반 심의를 일시 중단할 뜻을 비쳤다. 이것으로 비판 여론을 잠재울지 의문이다. 심의기구의 자의적 판단에 쌓인 불만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이젠 ‘대중이 판단할 일을 민간이 아닌 정부가 하는 게 타당한가’라는 본질적인 논쟁으로 번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민간 자율기구이나 공적 기금을 재원으로 한다. 사실상 정부 심의기구로 인식된다. 정치성 논란도 곧잘 빚는다. 방통심위가 최근 방송사에 가수 현아의 ‘버블팝’ 춤이 선정적이라고 통고했다. 방송사들이 소속사에 안무 수정을 요청했지만 소속사는 방송 출연을 중단했다. 사안의 핵심은 선정성 여부가 아니다. 방송사가 해도 충분한 판단을 왜 방통심위가 하느냐다.

 선진국들은 음악과 방송 심의를 거의 민간 자율에 맡긴다. 방송 콘텐츠를 방송사와 단체 윤리강령이나 자체 기준으로 심의한다. 음반 심의는 완전 자율이다. ‘표현의 자유’ 보장도 있지만 유해성 문제를 대중 판단과 산업계 자정 활동, 소송으로 해결하고도 남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부 기성세대의 문제 제기를 빌미로 ‘나쁜 콘텐츠’를 걸러낼 심의기구 존속을 주장한다. 하지만 콘텐츠가 좋은지, 나쁜지를 대중을 대신해 판단해 주겠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착오다. 판단과 제재 모두 산업계와 대중이 다 알아서 한다. 정말 문제가 심각하면 민간 자율 심의를 강화하도록 유도하면 된다. 직접 안 해도 될 일에 정부가 나서니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오해를 받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