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IT 코리아의 세 가지 딜레마

[ET단상] IT 코리아의 세 가지 딜레마

 서정수 KTH 대표이사 suhjs001@kthcorp.com

 

 최근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HP의 PC사업부 분사 사례에서 보듯이 글로벌 IT시장 경쟁력은 하드웨어(HW)에서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변화하는 IT 환경에서는 콘텐츠, SW 산업이 핵심이며, 경쟁력을 발휘한다. 이 두 가지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HW 중심의 전략에서 ‘창의성’ 중심의 새로운 SW 전략으로 국내 IT 환경을 재조명해야 할 시기다.

 한국은 뛰어난 제조 기술과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로 HW 중심의 IT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다. 지금도 ‘IT 최강자’라 말할 수 있을까. IT 강국 코리아의 위상은 과거의 일이 됐다. 유독 SW 부분에는 약한 코리아다. 이유를 살펴보면 국내 IT 환경에 세 가지 딜레마가 눈에 띈다.

 첫 번째 딜레마는 ‘IT 강국’으로서 글로벌 IT 시장 성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세계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1위, 최근 일본 총무성 발표 정보화 활용도 평가 1위 국가로서 성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네트워크 기술이나 HW 산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과거에 성장 정체기를 맞았던 IBM과 HP의 확연히 달랐던 대응을 보자. 당시 IBM 루 거스너 대표는 IBM을 살리기 위해 취임 후 내부 문제점 진단에 이어 내실 다지기 전략을 실행했다. 압력에 굴하지 않고 계획을 수행해 2년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반면 HP는 어려움을 겪을 당시 칼리 피오리나가 취임, HP의 성장을 위한 비전을 새롭게 창조하는데 주력했다. IT의 미래에 대한 꿈같고 유토피아적인 모습으로 성장하는 기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외형적 성장에 주력한 결과, 그녀는 사실상 퇴출되고 HP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결국 ‘성장의 강박관념’이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했다.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지금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강점을 살려나가며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정책 설정 이른바, 룰세팅(rule setting)의 강박관념이 그 두 번째 딜레마다. 우리 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룰 부재’ ‘정책 부재’라 간주하며 룰세팅 강박관념에 휩싸인다. ‘룰’이란 모두를 표준화해 항상 예측 가능하며 결과가 예상대로 창출되기 때문에 모두가 선호한다. 하지만 이 룰은 평범을 지향해 결국엔 창의성 말살을 초래한다. 물론 예측 가능하며 목표를 뚜렷이 해야 하는 것에는 분명 룰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타 경우에는 자율규제 또는 사후규제와 같은 접근이 바람직하다. 창의성이 바탕인 IT 업계는 특히 그렇다. 좀 더 자유롭고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피상적 문제 해결에 몰두한다. 사회·구조적 현상의 표면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대책으로 절대적 시간을 규제하는 등 표면적인 현상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그 예다.

 요즘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문화, 가치관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디지털 기기에 능하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세계인과 인맥을 맺는 세대다. 게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세상에 더 의존하는 그들을 먼저 이해하고, 그들의 해방구가 왜 게임으로 가게 되는지, 그들의 실제 놀이 문화, 문화 소비는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게임 시간을 통제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먼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 즉, 근본 문제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IT강국 코리아’. 더 이상 타이틀에 얽매여 강박관념에 휩싸이지 말고 다시 한 번 내실을 다지고 우리의 강점을 살려내는 데 주력하자. 지금이야말로 ‘창의성’을 바탕으로 SW와 콘텐츠 역량을 성장시켜야 하는 적기다.

[ET단상] IT 코리아의 세 가지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