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콜롬비아 국립대 프로젝트, 한국인이 만든다

“마약을 밀수출하면 어떻게 처벌받나요. 판례를 찾아봅시다.”

두꺼운 법학 서적을 뒤적이지 않아도 커다란 모니터를 몇 번 터치하자 판례가 뜬다. 교수가 다시 모니터를 가볍게 터치하자 학생이 메모해 놓은 강의노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또 다른 모니터에 교수의 자료가 보기 좋게 정리된다. 강의를 마치고 찾은 도서관에 책이 없다. 학생들은 스마트기기로 매일 업데이트된 디지털책과 자료로 공부한다. 스마트기기와 50인치 모니터를 연결해 콘텐츠를 보는 학생도 있다. 콘퍼런스룸에선 영상회의가 한창이다. 섬에서 연구 중인 교수가 띄운 자료를 교수들이 스마트패드로 검토한다. 자료 수정도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디지털 콜롬비아 국립대 프로젝트, 한국인이 만든다

미국 MIT나 스탠퍼드대학의 모습이 아니다. 콜롬비아 국립대학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선진국에서도 찾기 힘든 디지털대학 프로젝트가 이 나라에서 나왔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주역은 바로 `한국인`이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고경호 교수가 콜롬비아에 온 계기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다. 미국에서 다니던 건축회사가 부도나자 그는 평소에 관심이 깊던 `중남미 도시 개발` 연구를 하러 이듬해 3월 콜롬비아를 찾았다.

애초에 고 교수는 연구를 이어가려고 미국에 돌아가려 했다. 그의 연구 초안을 읽은 콜롬비아 보고타국립대학 총장이 그를 붙잡았다. 단순한 `캠퍼스 리모델링`이 아닌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친환경 캠퍼스`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우선 `종이 없는 디지털도서관`을 구상했다. 콜롬비아 대학은 선진정보를 얻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고 교수는 정보 전달 속도를 높이기 위해 책이 아닌 디지털을 선택했다. 고 교수는 “가장 빠른 정보 전달이 도서관의 목적”이라며 “디지털 자료는 인터넷으로 업데이트돼 어디서든 항상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 강의실도 교수와 학생 간 `소통`을 극대화하는 `디지털교실`로 바꿨다. 터치 모니터와 스마트패드, 스마트폰이 칠판과 책 역할을 대신했다. 강의 현장에서 교수와 학생은 최신 정보에 관해 토론하면서 학습효과를 높인다. 책으로 하던 일방적 강의실 풍경은 180도 바뀌었다.

콜롬비아 국립대는 전국 8개 지역에 캠퍼스가 있다. 디지털 콘퍼런스룸은 먼 거리의 한계를 단숨에 허물었다. 교수와 연구자는 디지털 콘퍼런스룸에서 영상회의를 하면서 연구 성과를 발전시킨다.

이 프로젝트를 애플이 돕는다. 고 교수의 도움 요청에 애플은 본사 차원에서 적극 나섰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앱 개발과 기술 지원, 장학금까지 지원했다. 한국 기업도 한몫했다. LG전자는 블루투스 기능까지 갖춘 스마트 모니터를 파격적인 가격에 제공했다. 고 교수 뜻에 동감한 결과다. 이러한 기업들 덕분에 콜롬비아 국립대 8개 캠퍼스 전체가 수업을 함께 듣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고 교수는 “콜롬비아 국립대 디지털 프로젝트는 중남미 미래도시의 표준”이라며 “대학의 디지털 서비스를 개방해 더 많은 콜롬비아 국민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