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43] 첫 온라인 게임 넥슨 `바람의 나라` 상용서비스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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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접속이 안 돼서 전화했어요. 왜 이런 거죠?”

“죄송합니다. 지금 고치는 중입니다.”

“전화 받으시는 분은 누구시죠?”

“김정주입니다.”

1996년 4월 `바람의 나라`가 PC통신 천리안으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같은 해 11월 정액제 과금을 시작한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그래픽 기반 온라인 게임의 첫 상용화다. 김정주 대표와 송재경 대표가 넥슨을 공동 창업한 지 2년여 만이다.

[100대 사건_043] 첫 온라인 게임 넥슨 `바람의 나라` 상용서비스 <1996년 11월>
박웅석 바람의나라 개발팀장, 김영구 넥스토릭 대표이사, 박재민 사업지원실장(왼쪽부터)가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 기네스 인증서를 들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박웅석 바람의나라 개발팀장, 김영구 넥스토릭 대표이사, 박재민 사업지원실장(왼쪽부터)가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 기네스 인증서를 들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바람의 나라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1996년에는 한 달에 고작 100만원을 벌었다. 지금과 달리 정액제였다. 서비스 가격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월 4만원대였다. 게임 접속에 문제가 생겨 회사에 전화를 하면 김정주 대표가 직접 전화를 받기도 했다.

◇두 청년의 꿈,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어지다=김정주 넥슨 대표와 송재경 대표는 86학번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와 카이스트 동기다. 학생시절부터 소프트웨어 회사 창업을 함께 꿈꿨다. 두 사람은 카이스트에서도 같은 지도교수인 전길남 교수의 실험실을 다녔다.

나중에 국내 최초 인터넷회사인 아이넷을 창업한 허진호 대표, 박현제 솔빛미디어 대표, 정철 삼보컴퓨터 대표 모두 전길남 교수의 실험실에서 연구했다. 송재경 대표가 먼저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한글과 컴퓨터로 나갔다.

넥슨의 초창기 창업은 우리나라 게임사 창업의 빛과 그림자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94년 김정주 대표와 송재경 대표는 넥슨을 공동 창업했다. 당시 벤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았기 때문에 자본금은커녕 사무실 임차료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김정주 대표가 아버지로부터 6000만원을 지원받았고, 한국IBM이 5000만원을 투자했다. IBM의 서버나 가구, 집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1995년 3월 경 송재경 대표가 먼저 즐겨 보던 만화를 게임화하자는 제의를 했다. 1992년부터 만화잡지 `댕기`에 인기리에 연재되던 동명의 만화 `바람의 나라`였다.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를 배경으로 우리나라 고대 역사를 다룬 순정만화였다.

두 사람은 김진 작가를 찾아 원작 사용 계약을 했다. 김진 작가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청년들이 나를 찾아와 게임 개발을 설명했다”면서 “무언가를 재미있어 하고, 열정적인 눈빛에 쉽게 계약을 했다”고 기억했다.

넥슨은 원작 계약을 하고 본격적 개발에 착수한다. 바람의 나라가 나올 당시에 천리안과 하이텔에 유행하던 게임은 텍스트 기반 머드(MUD)게임이었다. 그래픽이 없는 머드게임은 대화로만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송재경 대표는 최초의 상용 머드게임 `쥬라기공원`을 개발한 바 있다.

당시 국내 게임시장은 패키지게임과 외국산 콘솔게임이 주도했다. 이미 일본과 미국에서는 대규모 자본을 투자한 게임이 많이 등장했지만, 온라인 게임은 `블루오션`이었다. 널리 알려진 리처드 게리엇의 `울티마 온라인`도 1997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바람의 나라는 넥슨에 `최초`라는 선구자 타이틀을 달아준 첫 번째 기념비적 작품이다. 천리안을 시작으로 1997년 여름 인터넷 과금이 이뤄진다. PC방이 처음 나왔던 시기다.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이 이어지면서 게임 인기도 서서히 올랐다.

서비스 16주년을 맞은 '바람의 나라' 대표 이미지
<서비스 16주년을 맞은 '바람의 나라' 대표 이미지>

◇넥슨, 신화가 됐다=넥슨은 1998년에 이르러서야 연매출 100억원을 기록할 수 있었다. PC방 과금으로 유료화 노하우를 쌓아가던 것도 이 시기다. 넥슨은 그동안 웹에이전시 일을 도맡아 대기업의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는 `용역`일로 회사 운영을 계속했다. 넥슨의 웹에이전시 사업을 도맡은 것이 카이스트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던 나성균 네오위즈 대표다. 서민 넥슨 대표와 정상원 띵소프트 대표도 게임 개발의 주역이다. 젊은 개발자로 넥슨에 합류한 그들이 바람의 나라를 직접 프로그래밍했다. 초창기 넥슨은 게임업계 인재사관학교였다.

바람의 나라는 넥슨의 든든한 기반이 됐다. 2005년 정액요금제가 폐지되고 무료화 선언을 하면서 제2의 생명을 부여받았다.

송재경 대표는 넥슨을 떠나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 개발에 성공한다. 만화가 신일숙의 동명의 순정만화 원작 `리니지`가 모델이 된다. 국내 온라인 게임산업이 용트림을 시작한 시기다. IMF 위기와 PC방 창업을 기회로 온라인 게임은 대중화의 급물살을 탔다.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로 발전하면서 게임이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간다. 한국이 종주국이 된 e스포츠는 전문 중계 방송 시스템과 프로게임단 창단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게임 산업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아케이드, 콘솔, PC게임의 출발은 늦었지만 온라인 게임 종주국으로 우뚝 섰다. 2002년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약 3조원에 달했고, 이 중 1조원이 온라인 게임이었다. 당시까지도 게임 매출의 절반 이상은 아케이드게임에서 나왔다.

포트리스, 뮤, 거상 등 온라인 게임 산업 1세대의 성공사례가 하나둘씩 만들어졌다. 2010년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7조4312억원으로 집계된다. 국내 온라인 게임 매출액은 4조7673억원으로, 전체 게임 매출액의 64.2%를 차지했다. 2012년 게임산업 예상 규모는 10조원에 육박한다.

2000년대 들어 게임 한류 바람도 거세졌다. 게임은 문화 콘텐츠 산업의 해외 진출을 이끈 효자산업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 평균 게임산업 수출은 26% 증가했다.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수출 기조는 유지했다. 2009년 게임산업 수출액은 전년 대비 13.4% 증가한 12만4085달러를 기록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가속화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의 90%는 한국 게임이 차지했다.

2011년 중국 최고 인기 온라인 게임은 국내 개발사가 만든 `크로스파이어`였다. 중국에서 연간 1조원을 넘게 벌어들였다.

넥슨은 `큐플레이`로 부분유료화 모델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무료 게임 플레이에 서비스를 부분적으로 과금하는 부분유료화 모델이 정액제 수익을 앞질렀다. 넥슨은 `크레이지아케이드비앤비`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등 대중적 게임으로 인기를 모았다. 2011년 12월에는 일본 증시 상장에 성공했다. 닌텐도, 소니, 블리자드 등 세계적 게임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국내 게임사가 만든 게임은 전 세계 수천만명이 즐기는 `국민게임`이 됐다.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터키까지 호령한다.

스마트폰 열풍에 힘입어 모바일 게임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는 4600억원이다. 제2의 벤처열풍을 주도하며 모바일 게임사 창업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서비스 16주년을 맞은 바람의 나라는 국내 최장수 온라인 게임이란 타이틀을 새로 얻었다.

송재경 넥슨 공동 창업자(현 엑스엘게임즈 창업자 겸 대표이사
<송재경 넥슨 공동 창업자(현 엑스엘게임즈 창업자 겸 대표이사>

◆ 송재경 넥슨 공동 창업자(현 엑스엘게임즈 대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의 아버지로 불린다. 우리나라 최초로 상용화된 머드게임 `쥬라기공원`, 세계 최초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그리고 `리니지`까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금은 차세대 온라인 롤플레잉게임(RPG)으로 손꼽히는 `아키에이지`를 개발하고 있다.

송재경 대표는 서울대학교 학부 시절부터 김정주 대표와 창업 이야기를 나눴다. 벤처 열풍이 막 꿈틀대던 시기였다. 모두 제2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를 꿈꿨다. “공부보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창업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김정주 대표와 게임사 넥슨을 만들었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13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수년간 먹고 자며 개발에만 몰두했다. 김정주 대표가 경영의 귀재라면, 송재경 대표는 개발의 천재였다. 기획, 그래픽, 프로그래밍까지 혼자 해냈다. 그래픽 기반 머드게임이란 기술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김정주 대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같이 일할 사람들을 데려오고 개발비를 벌어오면서 코딩까지 하던 시기였죠.”

송재경 대표는 개인 컴퓨터의 빠른 확산을 바라보며 게임사 창업의 꿈을 꿨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워드작업이었다. 한글과컴퓨터가 이미 장악한 분야였다. 두 번째로 많이 하는 일이 PC게임이었지만, EA나 오리진 같은 미국 회사가 있었다. 온라인 게임 분야는 아무도 하지 않은 만큼 적은 투자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 대표는 1990년대 중반 PC통신으로 머드 게임을 서비스하던 업체들은 월 5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거두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게임 패키지 업체들은 불법 복제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송 대표는 국내 게임산업이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복합적 원인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과감한 초고속 인터넷 망 투자는 미국, 일본보다 앞선 인터넷 문화를 만들었다. 수도권 인구밀도가 높았던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송 대표는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갖고 놀던 세대가 때마침 사회에 진출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8비트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초반”이라며 “20대 후반이 된 컴퓨터 세대가 1990년대부터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도 성공 요인이다. 패키지 게임이나 콘솔 게임은 미국과 일본의 대기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 인재가 몰렸고 자본도 함께 따라갔다.

송 대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소득 수준이나 여가 시간이 적은 것도 게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온라인 게임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엔터테인먼트였고 접근성도 좋았다. IMF 명예퇴직자들이 차린 PC방에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가 등장했다. 전 국민이 게임에 관심을 가졌다.

송 대표는 “게임은 더 이상 단순한 `오락`이 아닌 영화와 음악과 같은 `문화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실효성 없는 규제 남발이 이어지지 않기 바랐다.

“게임은 남녀노소 온 국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전체 콘텐츠 수출 규모에서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하는 것이 게임산업이죠.”

게임 산업에서도 새로운 도전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기혁신을 통해서 더 좋은 게임, 재미있는 게임, 감동을 줄 수 있는 게임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제2의 바람의 나라, 제2의 넥슨이 더 많이 나오기를 당부했다.


[표] 국내 게임산업 시장 규모(단위:억원)

(자료:대한민국 게임백서)

[표] `바람의나라` 주요 연혁

2011년 9월 `바람의 나라`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 분야 기네스북 등재

2010년 7월 백제 업데이트 실시

2007년 7월 `바람의 나라` 메인스토리 `바람연대기` 공개

2006년 7월 `바람의 나라` 10주년

2005년 8월 부분유료화 성공으로 동시접속자 13만명 기록

1998년 7월 영문판 `바람의 나라`(Nexus TK), 미국 현지 상용화

1998년 2월 문화체육부-전자신문사 주관 `이달의 우수게임` 선정

1996년 4월 `바람의 나라` 정식 서비스 실시

1996년 2월 `바람의 나라` 시범서비스 실시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