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빅 데이터, 과거 CRM에서 배운다

과거 수많은 CRM 프로젝트가 추진됐지만 많은 기업이 무용론에 빠진 적이 있다. 돈을 투자해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현업이 빠진 상태에서 IT 위주로 CRM을 구축, 실제 활용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ET단상]빅 데이터, 과거 CRM에서 배운다

또 CRM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통계분석 전문가가 빠진 것도 한 원인이다. 만들고 나니 현업은 `볼 게 없다`는 반응이었다. 수십만가지의 리포팅을 할 수 있는 엄청난 시스템이었지만 미래예측을 하고 싶었던 실무진의 요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빅 데이터 프로젝트는 CRM 프로젝트와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당시 CRM 프로젝트가 현업에서 주도하지 않아 실패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현업 실무자가 주도했다면 시간이 더 걸렸겠지만 실패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빅 데이터 역시 현업이 주도해야한다. 물론 당시 현업이 CRM을 몰랐듯, 현재 실무자도 빅 데이터를 모른다. 그렇다면 시간을 두고 교육을 해야 한다. 빅 데이터 프로젝트에서 속도조절이 필요한 이유다. 남들 다한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 없이 뛰어들면 반드시 실패한다. 빅 데이터는 여러 부서에서 필요하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다. 때문에 가능하면 기획부서가 맡고, 유사한 기능을 가진 힘 있는 부서가 태스크포스(TF)팀의 리더를 맡아야 한다.

빅 데이터를 적용할 때 빅 데이터에 매몰되는 우를 범해선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에서 중요한 데이터는 빅 데이터보다는 기업 내부 데이터다. 그것이 `빅`이든 `스몰`이든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경영이슈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데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먼저 경영의 이슈가 있고,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는 것이 좋은지는 이후 파악할 일이다.

CRM 프로젝트 때에도 고객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 없이 고객을 나누고, 분석했다. 소위 고객세분화라는 것이다. 어떤 회사는 고객을 250개 부분으로 나누었다. 과연 이 세분화된 고객층을 대상으로 각각의 마케팅을 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추진했다. 남이 하니까 고객과 마케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나도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수십억원을 들인 고객 세분화 결과는 그 이후로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

CRM 프로젝트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 대부분은 IT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투입됐다. 이 프로젝트로 명확하게 어디서 수익이 생기는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처음부터 IT시스템 구축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것이 과연 고객에게 더 많은 매출을 가져다줬을까. 오히려 고객의 로열티가 어떻게 축적되고 어떻게 매출에 도움이 되는 지를 알아본 뒤 대규모 IT투자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현재 빅 데이터를 접근하는 방식도 IT시스템 구축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IT투자를 많이 하게 되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빅 데이터는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오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장기간 제대로 해야 성과가 나온다. 또 내부적으로 연습을 많이 해봐야 한다.

처음부터 대규모 IT투자를 투입하는 것은 위험성이 높다. 대신 클라우드를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또 내부 인력을 키우고 분석역량을 제고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분석의 정확도는 지속적으로 `시도와 실패(try and error)`를 해봐야 높아진다.

최근의 빅 데이터 프로젝트는 과거 CRM이 실패했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커 보인다. 실패의 지점도 비슷할 것 같다. 빅 데이터가 과거 CRM으로부터 배워야하는 이유다.

장동인 미래읽기컨설팅 대표·빅데이터전문가협의회 의장 donchang@futuretren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