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슈퍼갑`에 휘둘리는 변리사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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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이다. 당시 남종현 그래미 회장과 김대인 법률소비자연맹 총본부 총재, 이정한 대한변호사협회 기획이사, 김현탁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테라전자소자팀장, 전상우 특허청장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특허분쟁 소송대리인으로 변호사 외에 변리사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변리사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각계 대표 의견을 듣고자 마련했던 자리다.

[데스크라인]`슈퍼갑`에 휘둘리는 변리사법 개정안

치열한 논쟁이 계속됐으나, 이날 승자는 슈퍼 갑으로 인식되는 변호사 업계였다. 참석자 5명 중 4명이 모두 변리사 공동 소송대리인 제도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이정한 이사만 단호하게 반대했다. 현 소송대리제도가 전문 능력을 갖춘 변호사에게 자격을 주도록 제도화돼 있으니 어렵게 변리사법을 개정하지 말고 변리사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된다는 것이다. 반대 사유라고 하기에는 변명이 궁색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동안 변리사 공동 소송대리인 제도 도입은 해묵은 논쟁으로 전락했다. 이슈화된 지 수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핫`한 상태로 공회전 중이다. 당시에도 `쉽지 않겠구나` 했지만 예감이 이렇게 정확할까 싶을 정도였다. 이후에도 두어 차례 의원 발의로 관련 개정안이 국회 문턱까지 갔지만, 거기까지였다.

흐른 시간만큼 국내외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환경 또한 녹록지 않다. 총성 없는 글로벌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안 우리는 세월만 낚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애플 간 특허 분쟁이다. 수조원의 배상액을 내건 양사는 한 치 양보도 없다.

국내 중소 벤처 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더하다. 지식재산권에 관한 한 대기업이나 특허괴물의 소송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웬만한 특허는 이들이 그물망처럼 촘촘히 특허를 걸어놓은 탓에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

애써 취득한 특허를 지켜내기도 버겁다. 소송으로 이어지면 더 심각한 상황이 초래된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우월하다 해도 법정에서 내가 가진 기술을 잘 설명하고, 재판관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만큼 특허 분쟁은 일반론이 아닌 기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법정에 서야 한다.

본질만 놓고 보자. 미국이나 유럽처럼 소송 당사자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는 제도는 상식이다. 지난 6년간 업계는 끊임없이 제도 도입을 주장해왔다. 작게 볼 때 업체 간 분쟁이지만, 넓게 보면 국익과 관련된 사안이기도 하다. 우리 기업은 세계 곳곳에서 특허 분쟁에 휘말려 있다. 해외에서 자원을 들여와 기술과 제품을 수출해 먹고사는 나라니 어쩔 수 없다. 서둘러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외국계 로펌 진출이 가시화하면서 대외적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외국 업계가 전문 변리사를 앞세워 법정에 똑같이 선다면 그렇지 않은 우리 업계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조계와 국회는 꿈쩍하지 않는다. 이해 당사자들과 한통속이라는 힐난도 들을 만하다. `슈퍼 갑`의 횡포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부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손톱 밑 가시 뽑기`에 나섰지만, 이 문제만큼은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원욱 의원(민주당)이 지난 4일 변리사 공동 소송 대리인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역대 의원 중 같은 사안으로 발의하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모두가 필요하고 원하는 제도를 기득권을 내세워 가로막는 건 옳지 않다. 국회가 이해집단의 대변자는 아니지 않은가. 국회 법사위의 대승적 선택이 필요하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