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IP 허브 주도권 경쟁 점화…밀리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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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이 특허 출원 주요 국가로 부상하면서 세계 지식재산(IP) 판도를 바꾸고 있다. IP 창출·보호·활용 분야에서 앞 다퉈 아시아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IP 허브 종합계획`을 발표하는 등 아시아 IP 허브 각축장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 차원에서 대응 전략이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 정부 국정과제에서 IP 시장 생태계 선진화를 내세운 만큼 체계적인 아시아 IP 허브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시아 IP 허브 격돌에 뛰어든 싱가포르 `위협적`

독일 한 법무법인과 거래를 하던 전종학 경은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최근 거래처가 싱가포르에 현지법인을 세웠다는 것을 알았다. 싱가포르에 거점을 두고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것이다. 전 변리사는 “언어·교육환경·세제혜택 등 인프라 때문에 법무법인 뿐 아니라 유럽 여러 기업이 아시아 본부를 싱가포르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나라는 법률시장 문제 등 IP 관련 해외 기업이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올해 4월 `아시아 IP 허브 종합계획(IP HUB Master Plan)`을 발표했다. 전략 목표로 △기업이 IP를 국제적으로 관리·거래할 수 있는 거점 형성 △기업이 IP를 등록·보호·활용할 수 있는 IP 서비스와 인프라 구축 △IP 분쟁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처리를 위한 IP 분쟁 해결 체계 구축 등이다. 싱가포르가 제조 산업 기반이 약한 만큼 연구개발(R&D)을 통한 IP 활용보다는 거래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전략이다. 강민수 광개토연구소 대표변리사는 “싱가포르 법인세율이 다른 나라보다 낮고 친기업적 풍토가 있는 만큼 글로벌 IP 기업·로펌 유치에 유리하다”며 “아시아 지역에서 IP가 유통될 수 있는 거점 요소를 모두 갖췄다”고 평가했다.

◇중국 `IP 매입이 새 트렌드` vs 일본 `IP로 장기불황 탈출

지난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특허(43만5608건), 실용신안(58만1303건), 디자인(50만7538건), 상표(123만3827건) 등 전 IP 분야에서 출원 1위를 달성했다. 중국은 여세를 몰아 질적 창출과 활용 활성화를 위한 도약 중이다.

중국은 정부에서 IP 거래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중국 국무원이 `국가지식산권전략강요`를 발표한 이후 모든 지역(성)별로 IP 거래소가 설치됐다. 베이징 은행을 시작으로 금융권과 협력해 IP 담보대출 활성화 수단으로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거래소 중심으로 해외 IP 매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중국 IP 전문가의 설명이다. 유성원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미국 등 선진국가 기업·대학·연구소 등에서 나오는 IP를 기술도입이라는 명목으로 대량 매입하고 있다”며 “이미 세계 기술이전 최대 수요 시장으로 떠올랐다”고 밝혔다. 중국은 외국 기업특허를 매입하면 세제혜택을 준다. 지역별로 혜택정도는 다르지만 기술 도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일본 지적재산전략본부도 올해 초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적재산정책비전안`을 발표했다. IP 창출·보호·활용 단계를 넘어 해외 진출 일본 기업 IP 경영을 지원하는 등 글로벌 IP 시스템 구축이 한창이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은 “비전안을 통해 아시아 신흥국의 급격한 성장과 디지털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것”이라며 “성장기조 경제에서 기업 IP 경영을 촉진해 장기 불황을 탈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아시아 IP 허브 구축 서둘러야`

싱가포르 `지식재산조정위원회(IP Steering Committee)` 중국 `지식재산권전략제정위원회` 일본 `지적재산전략본부` 등은 모두 국가차원에서 아시아 IP 허브 전략을 구상하는 컨트롤타워다. 우리나라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지재위 영향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한 지재위 민간위원은 “아시아 IP 허브를 노리는 나라는 대부분 컨트롤타워를 국가 수장이 직접 챙겨 IP를 주요 정책을 관리한다”며 “우리도 국무총리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좀 더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국가 IP전략을 청와대에서 직접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업계 전문가는 “선진 IP 생태계 구축이라는 비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IP 허브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은 부재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시아 IP 허브 구축을 위해 전제돼야할 IP 거래 활성화도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IP 거래를 기술 유출로 인식하고 IP 금융 등 투자 리스크를 부담하기 꺼려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대한변리사회 관계자는 “대학·연구소 특허가 잠자고 있고 IP 거래가 부진한 상황 속에서 기술 적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아시아 IP 허브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라이선스나 IP 매매로 IP가 해외로 거래되는 체계를 만들어줘야하는데 기술 유출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주요국 IP 허브 구축 주요 전략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