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 TV 시장…후방 산업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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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업체의 부품 내재화와 물량 몰아주기 심화, 중국의 공세, 시장 침체 등 세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최근 국내 TV시장에서 소재·부품 등 후방 산업군이 기로에 섰다. 품질을 앞세운 일본과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한 중화권 사이에 낀 형국이다. 삼성전자·LG전자가 세계 TV시장을 선도하고는 있지만 강도 높은 공급망관리(SCM) 전략을 추진하면서 소수·대형 협력사만 살아남을 전망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TV시장에서 전통적인 중소·중견 부품 업체들이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대형 TV 업체가 자사 부품 채용 비중을 늘리는데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 소수 핵심 협력사 비중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TV시장이 뒷걸음치고 있어 판가 인하 압력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LCD TV용 PMIC와 디지털앰프를 자사 시스템LSI사업부에서 공급받기 시작했다. 과거 삼성전자가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을 내재화했던 전례를 감안할 때 관련 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PMIC는 국내 전문업체인 실리콘마이터스가 점유율을 늘려오고 있었고, 디지털앰프는 네오피델리티가 삼성·LG 양사 물량의 50% 이상을 공급하던 품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PMIC, 디지털 앰프 등 주요 부품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 오픈 셀 방식이 확산되면서 대만 노바텍·하이맥스 등도 LCD TV용 타이밍컨트롤러(T-con)·PMIC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DTV 수신칩 시장에서도 토종 전문기업들이 사라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2011년 기준으로 대만 미디어텍(엠스타)의 DTV칩 의존율이 57.2%를 넘어섰다. 게다가 이를 대체하는 제품은 모두 자체 개발한다. 국내 전문 업체들이 파고들 틈이 없다. 미디어 프로세서 개발 역량을 갖춘 팹리스 기업들이 대부분이 고사되고 전문 인력들은 삼성전자·LG전자 등으로 흩어진 결과다.

커넥터 시장은 일본 업체인 JAE·후성 등이 여전히 강세다. 씨엔플러스·연호전자 등 국내 전문업체들이 있지만 일본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콘덴서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기세가 무섭다. 레론·캡슨은 지난해 TV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고성장세를 타고 있다. 삼화콘덴서·삼영전자 등 국내 전문업체가 마이너스 성장을 겪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력공급장치 주요 부품인 페라이트코어도 중국 천통코어 등이 국내 업체인 삼화전자·영화훼라이트·토다이수를 제친 지 오래다.

특히 세계 TV시장이 침체되면서 부품 생태계 전반에 고충을 더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는 올해 매출액 기준 세계 TV시장 규모가 지난해보다 4.8%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지난 상반기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과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6.5%, 3.6% 떨어졌다.

영업이익률이 줄면서 고강도 단가 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매팀마다 이익률을 확보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고 전했다. 한 TV 부품 업체 CEO도 “수율을 개선하는 등 내부적으로 단가 인하 노력을 하고 있지만 난국을 타개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