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밀라노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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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수 칼럼]`밀라노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밀라노 프로젝트`라고 있다. TV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패션쇼 모델 도전이 아니다. 대구시를 밀라노처럼 국제 섬유패션 도시로 키운다며 1990년대 말 시작한 대형 국책 과제다. 몇 년간 수천억원을 투입했다. 이후 지역전략산업진흥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더 지원했다. 지역 클러스터사업 시초 격이라 더 기대를 모았던 사업이다. 결과는 만신창이다.

그나마 사업 초기 있던 대형 섬유업체 대부분이 몰락했다. 영세 중소기업은 여전히 제자리다. 패션 산업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이 정도라면 차라리 낫다. 국감과 감사원의 예산 낭비 사업으로 늘 거론된다. 각종 비리도 곧잘 불거졌다. 대구와 밀라노간 자매결연이 거짓인 게 14년 만에 드러난 것은 가히 `화룡점정`이다.

실패 요인이야 많다. 실행 주체도, 전략도 두루뭉술했다. 나눠 먹기식 예산 분배만 있었지 기업과 산업 본연의 경쟁력 제고 방안은 없었다. 그런데 당시 전혀 다른 이유로 이 프로젝트가, 특히 패션도시 전략이 반드시 실패할 것으로 예고됐다.

대구 시민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다른 동네보다 굉장히 보수적인 곳이다. 그런데 패션과 디자인은 곧 자유다. 파격이며, 진보다. 유행이 곧 비즈니스모델이다. 대구와 같은 보수적인 곳과 영 궁합이 맞지 않는 산업이다. 돈만으로 안 될 것으로 봤다. 결국 그렇게 됐다.

반면에 정부 지원 없이 부산 패션산업은 대구보다 활성화했다. 서울 동대문과 G밸리, 신사동 가로수길도 정부 도움 없이 우리나라 패션산업을 이끈다. 밀라노 프로젝트 예산의 극히 일부라도 유행에 민감한 곳에 쏟았다면 패션디자인산업 인프라는 더 좋아졌을 것이다.

대구 섬유산업계가 전자소재, 자동차, 에너지, 항공, 건설 등에 쓰이는 첨단 산업용 섬유로 새 활로를 찾는다. 좋은 방향이다. 애초 이쪽에 집중했다면 지금 우리 소재산업은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 지역 특화 산업으로 더 크게 성공시킬 수 있었다.

밀라노 프로젝트가 지난 6일 갑자기 떠올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열린 날이다. 경제 부처 정책 질의에서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예산 증액 요구를 쏟아냈다. 겉으로 세수 부족을 걱정하면서 지역구 예산만큼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지역구 의원 속성이라지만 너무 심하다. 지역구 의원이 요구하는 예산의 상당수가 바로 밀라노 프로젝트 같은 지역 특화 사업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이런 사업을 잘 추진하고, 성공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미 다른 곳에서 잘하는 사업인데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사업이 많다. 지역 현실과 맞지 않는데도 멋진 산업이니 해보자는 사업도 있다. 이런 문제를 정부 예비 타당성 조사로 지적해도 늘 정치 논리에 밀린다. 타당성 조사 또한 눈앞의 경제성만 따질 뿐 본질을 꿰뚫지 못한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산업 정책에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너무 앞서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보여주는 산 증거다. 프로젝트 자체가 당시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의 이른바 `동진(東進) 정책`과 문희갑 당시 시장의 중앙 정치력 확대가 맞아 떨어져 나왔다.

산업정책이라고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정치 논리 자체를 나무랄 일도 아니다. 다만, 시작은 그럴지라도 실행만큼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 논리가 온통 득세하니 진전이 없다.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퇴보다. 엄청난 국고 낭비다. 책임지는 이는 없다.

국회 예결위가 10일부터 계수조정소위원회를 통해 예산 감액과 증액 심사를 진행한다. 예산 속에 숨은 선심성 정치 논리를 가려낼 시간도, 의지도 없다. 납세자로서 분통이 터지지만 어찌 풀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한도전을 그리 많이 보는 모양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