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천송이 코트`에 날개를 달려면

[데스크라인]`천송이 코트`에 날개를 달려면

신드롬은 신드롬인가 보다. 수년을 끌어오던 숙원과제를 한번에 부각시켜 줄줄이 대책을 내오니 말이다.

‘천송이 코트 사건’으로 압축되는 ‘대한민국 전자상거래의 불편한 진실’은 그 나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시류를 읽어 가려운 곳을 콕 집어낸 대통령의 한마디에 금세 좋아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그만큼 복잡한 구조라는 얘기다.

인터넷 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1990년대 후반, 시대의 코드로 급부상한 격언이 있었다. ‘21세기 상거래 시장에는 오직 두 업종만 살아남을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 업체와 오프라인 물류 업체’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에는 아주 파괴적이었던 이 비전 덕분에 수많은 신생 기업이 등장했다. 부품과 소모성 자재를 기업 간 거래(B2B)로 제공하는 ‘e마켓플레이스’에서부터 생필품 몇 가지로 소규모 쇼핑몰을 창업하는 ‘1인 소호(SOHO)’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 소호들을 입점시킨 ‘오픈 마켓’도 등장했다. 시장 진입자는 초기 투자비가 낮아 좋고, 소비자는 ‘원클릭’으로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에 봇물을 이뤘다.

문제는 이처럼 물품과 매매자 간 실물을 확인하지 않는 ‘비대면(非對面)’ 상거래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불신’에서 불거졌다. 보지 않고 고른 물건에 ‘만족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상거래인 만큼 돈을 주고받는 ‘결제’가 수반돼야 한다. 편리해야 하는데 편리하지 않은 ‘인프라’와 ‘기술’도 걸림돌이 됐다.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지만 수많은 ‘부정행위’가 그간의 전자상거래 시장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설계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과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복잡한 본인 인증 체계를 만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번에 화두가 된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만 없애면 온라인 무역역조(貿易逆調) 현상이 없어질까.

당장의 불편함은 개선될 수 있으나 근원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쇼핑몰 업체들은 여전히 해외에서 온라인 클릭을 통해 들어오는 주문과 결제가 불안하고 해외 배송을 위해 물류체계를 갖추는 투자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손쉽고 안전한 결제 지원 기술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것은 규제의 틀에 갇혀 동맥경화 상태였던 우리나라 전자상거래 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민간이 경쟁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규제 혁파의 목적이지 않나.

갑자기 궁금한 것이 있다. 전자상거래, 온라인증권거래, 인터넷뱅킹 등의 규제와 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공무원들은 전자금융거래를 얼마나 사용할까. 3·20 사이버테러, 신용카드 고객정보 유출, 천송이 코트 사건 등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났듯 금융당국은 국민이 실생활에서 부딪히고 있는 전자금융거래가 IT 기반 위에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체를 모르고 급하게 만든 대책은 또 다른 규제가 될 수 있다. 금융과 상거래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신뢰’가 생명이다. 금융당국은 제로섬 게임 같은 규제총량제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국민이 만나게 될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중심에 두고 신뢰를 높일 수 있는 틀을 반드시 다시 짜야 한다.

정지연 경제금융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