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되면 '독주' 동반성장 '모르쇠'

산업 생태계 집어삼키는 황소개구리가 돼서야

‘빨리 가려면 혼자 가도 된다.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좋아하는 말이다. 아프리카 속담이지만 지금은 메르켈 총리의 금언처럼 회자된다. 독일 집권정당의 핵심 가치뿐 아니라 독일인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독일에 ‘히든 챔피언’ 같은 강소기업이 많이 포진돼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이폰 수입금지 거부권 행사가 삼성전자에 이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이폰 수입금지 거부권 행사가 삼성전자에 이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 세계인들은 한국을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손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한국 IT 산업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병폐로 곪아 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삼성전자라는 거대 독점 기업에 대한 쏠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정도의 회사라면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협력사가 50개 이상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1조원을 넘어서는 협력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상당수 삼성전자 협력사가 수익률 하락에 허덕이고 있다. 제대로 된 연구개발(R&D)을 할 여력이 있는 협력사도 드물다.

삼성전자는 돈이 되는 소재·부품을 베트남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다. 협력사와 공존을 택하기보다는 이익독점 방식을 택했다. 더 나아가 영세 업체들이 담당하던 액세서리·주변기기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중소·중견 기업을 이끌어 우리나라 IT 산업을 키워야 할 대표 기업이 산업 생태계를 위협하는 황소개구리로 탈바꿈했다. 과정은 어떻든 성과를 내야 하는 삼성전자식 단기 실적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자화상이다. 그것이 이른바 ‘삼성전자 DNA’라는 성공 수식어로 포장돼 있다.

지난 2012년만 해도 국내 스마트폰 액세서리 시장은 1000여개 기업이 1조원 이상의 시장을 형성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액세서리 사업에 뛰어들면서 대다수 영세 업체들이 이미 고사했다. 현재 사업을 영위하는 액세서리 업체는 2년 전에 비해 채 절반이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살아남은 업체들 중 상당수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액세서리 업체 한 임원은 “삼성전자가 대단한 회사인 것은 알지만 혼자서 모든 혁신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며 “액세서리 시장이 채 꽃 피우기도 전에 말살시키는 것은 결코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드웨어 경쟁력 덕분이다. 그러나 구글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에 의존하는 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삼성전자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타이젠 등 독자 OS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다. 그러나 독자 OS가 성공하려면 콘텐츠와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협력사야 어떻게 되든 말든,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삼성전자를 위해 회사의 명운을 걸 협력사는 없다.

삼성전자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사시로 삼는 회사다. 삼성전자가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빛바랜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해봐야 할 때다.

English Translation : http://english.etnews.com/communication/2944363_1300.html

기획취재팀 jeb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