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삼성전자 생산물량 줄어든 구미산업단지 주변 경기 `썰렁`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오후 3시 20분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후문. 교대근무를 마치고 삼삼오오 걸어나오는 근로자를 태우기 위해 택시들이 줄지어 서있다.

후문에서 10여분간 기다렸다는 한 개인택시 운전기사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일하는 사람이 줄었는지 예년에 비해 손님이 적다”며 “대기업 공장이 있는 구미 2단지, 3단지 부근은 4~5년 전부터 택시 손님이 별로 없어 썰렁한 거리가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삼성전자가 해외사업장 규모를 키운 뒤 물량이 줄어든 구미는 경기 부진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가 해외사업장 규모를 키운 뒤 물량이 줄어든 구미는 경기 부진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후문 건너편에서 10여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했다는 한 공인중개사도 “2007년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휴대폰 생산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이후 3~4년 동안 원룸 경매물건이 엄청나게 쏟아졌다”며 주변 원룸 경기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2009년 이후 휴대폰 생산물량을 베트남으로 대폭 옮기면서, 구미 경제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물론 협력사들은 주문물량 감소로 직격탄을 맞았고, 대기업 생산공장 하나만 바라보고 장사를 하고 있던 주변 상인들도 죽을 맛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경권본부에 따르면 구미국가산업단지 가동률은 지난 2010년 88.9%, 2011년 84.2%에서 2012년 79%로, 지난해 말엔 69.3%까지 급락했다. 여기에 지난 2007년 기준 구미산업단지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던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의 생산물량이 절반 이하인 3000만~4000만대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구미산업단지 부근 경기는 눈에 띄게 위축됐다.

실제로 2000년 이후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줄곧 수출 1위를 달리던 구미가 2010년 이후 4년 연속 1위를 놓친 것만 봐도 구미산업단지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구미 경제가 크게 나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황기 때 삼성전자는 구미 전체 매출의 46%를 차지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물량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는 그 여파가 고스란히 지역경기에 반영됐다.

지역민들에게 삼성전자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대구에서 창업했고, 구미 휴대폰 생산공장을 기반으로 세계 일류 휴대폰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역민들의 삼성전자에 대한 신뢰감은 특별했다.

2007년 5월,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휴대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자 대구경북지역이 충격에 휩싸였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연간 1억2000만대의 휴대폰 생산량 가운데 8000만대를 구미사업장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는 물량은 4000만대 수준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 삼성전자가 연간 1억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베트남에 짓겠다고 하자 구미와 인근 지역은 발칵 뒤집어졌다. 무엇보다도 구미산단 공동화가 현실이 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서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7년 뒤 구미사업장 생산물량은 실제로 절반이하로 줄었다.

베트남 공장 건립계획이 발표되기 3개월 전, 삼성전자는 무려 2900억원을 투입해 구미사업장내에 연구개발을 위한 대규모 구미기술센터를 건립하겠다며 기공식을 가졌다. 구미기술센터는 지상 20층, 지하 4층, 연면적 3만8000평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었다. 당시 지역민들은 삼성이 대구경북지역에 큰 선물을 안겨줬다며 반가워했다.

기공식에는 당시 윤종용 부회장, 최지성 정보통신총괄사장 등 삼성 최고 경영진과 지자체장 등이 대거 참석했다. 심지어 김범일 대구시장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케냐로 출국해야 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기공식에 참석했다. 이는 삼성전자 구미기술센터 건립이 구미는 물론 인근 지역에도 얼마나 큰 효과를 줄 수 있을지를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윤종용 부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구미사업장이 세계 정보통신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대구경북이 덩달아 대규모 모바일 클러스터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떠들썩했던 구미기술센터 건립은 결국 기공식을 한지 5개월 만에 공사가 중단됐고, 모든 계획은 백지상태가 됐다. 대내외 사업 환경 악화를 공사 중단 이유라고 밝혔지만 지역민들은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의 휴대폰 물량 해외이전은 지역 대학들의 취업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휴대폰 생산물량이 많던 2008년까지, 금오공대와 경운대 등 구미산업단지 인근 대학들은 삼성전자 협력사에 사람이 없어서 인력을 공급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후 삼성전자와 협력사를 바라보던 대학 졸업생들은 취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구미 인근 지역대학 한 교수는 “당시 모바일학과는 졸업 전에 입도선매하듯 관련 기업에 취업이 됐었는데, 지금은 해당 분야 취업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구미국가산업단지 내에는 ‘삼성전자 해외사업장에 구미사업장 설비와 동일한 생산라인을 깔고 있어, 조만간 구미 생산물량을 해외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지역민들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쟁을 위해 해외 생산기지를 늘리는 건 이해하지만, 국내 협력사 동반성장과 지역경제를 생각하는 상생 마인드가 절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획취재팀기자 jeb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