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해외 설비투자·고용 창출 늘리는 삼성전자…국내 경제 기여도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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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다.’

지난 1953년 아이젠하워 행정부 국방장관에 임명된 찰스 어윈 윌슨 GM 사장이 상원 인준청문회 중 남긴 유명한 말이다.

GM은 지난 1931년 포드를 제치고 미국 자동차 1위 업체로 우뚝 섰다. 당시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가운데 절반 이상을 GM이 생산했고, 전 세계적으로 80만명을 고용했다. GM 제국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그 후 GM은 시장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 자동차 업체들을 말살하고, 자동차 액세서리 등 영세 업체들을 시장 밖으로 내몰았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란 명제가 깨지기 시작했다. 미국 내에서 사회적인 비판이 일었지만 GM은 ‘그것은 진보의 비용’이라는 논리로 대응했다.

견제 없는 권력은 폭주할 수밖에 없었다. GM은 공룡처럼 거대한 조직으로 분화됐고 점차 혁신에 둔감해졌다. 1960년대 들어 심각한 부작용을 드러냈다. GM을 사랑하던 미국 국민은 점차 등을 돌렸다. 독일과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GM은 맥없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의 삼성전자와 50년 전 GM은 묘하게 오버랩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 정보기술(IT) 산업 발전과 수출 확대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약진할수록 우리 국민도 그 수혜를 누렸다. 제품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삼성전자는 국내에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삼성전자 협력사들도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수출이 늘어나도 국민 경제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베트남·중국 등 해외에 설비 투자와 고용이 집중된 탓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판매로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국민 반응은 시큰둥했다. 사실상 삼성 그들만의 잔치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50년 전 GM처럼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 베트남 공장에서 돈 되는 소재·부품을 직접 생산하면서 협력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고, 액세서리·주변기기 시장에도 진출해 영세한 업체들의 밥그릇을 빼앗았다. 스마트폰 판매로 사상 최대 수익을 거두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이 받는 혜택은 미미해졌다. 오히려 국내에서 신제품 스마트폰 출고가를 높여 팔고, 해외에는 싼 가격에 공급하는 이중적 모습으로 비난 받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삼성전자에 묻고 있다. ‘삼성전자에 좋은 것은 대한민국에 좋은가.’

◇삼성전자, 정부 감세 정책 최대 수혜…실제 법인세율 16.7%, 미국·일본 기업의 절반 이하

지난 몇 년간 정부는 대기업에 상당한 세제 혜택을 지원했다. 대기업 수출이 늘면 설비 투자와 고용이 증가하고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예전에나 적합한 정부 정책은 21세기 글로벌화된 국내 대기업에 전혀 효과적이지 못했다.

정부 감세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심지어 납부 법인세의 86%를 세액 공제 감면으로 돌려받는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삼성전자가 지난 2008~2012년 사이 공시한 세액공제 금액이 6조7113억원이며, 이는 같은 기간 부담한 법인세 7조8435억원의 86%에 이른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받은 세액공제 금액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전체 세금 감면액(11조3599억원)의 60% 수준에 이른다.

[이슈분석]해외 설비투자·고용 창출 늘리는 삼성전자…국내 경제 기여도 적어

선대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실제로 내는 법인세율은 16.7%에 불과하다. 반면에 미국·일본 내 1위 업체들이 내는 법인세율은 40%를 넘는다.

삼성전자는 다양한 이유로 세제 혜택을 받고 있다. 고용 창출 투자 세액공제로 이름이 바뀐 임시 투자 세액공제 금액이 가장 많고, 연구인력 개발비 세액공제가 그 다음이다. 에너지 절약 시설투자 세액공제, 생산성 향상 시설투자 세액공제, 근로자 복지증진 시설투자 세액공제 등도 있다.

기업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장려한다는 취지로 만든 제도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2012년 삼성전자의 세액 공제 감면액은 1조8715억원인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기업 감면액 9조4918억원의 19.7%에 이르는 규모다. 깎아준 법인세의 5분의 1이 삼성전자에 쏠렸다는 얘기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거둔 영업이익은 36조7841억원이다. 지난 2011년 영업이익이 15조6443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2년 만에 갑절 이상 늘었다. 삼성전자는 경영진에게 개인당 최고 70억원에 육박하는 고액 연봉을 지급했고, 무선사업부는 지난 연말 연봉 50%에 해당하는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업계 한 전문가는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삼성전자의 이익을 보전해준 셈”이라며 “삼성전자가 국가 경제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 냉정히 따져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1위 올랐지만, 낙수효과는 해외로…국내 투자·고용 증가 미미

삼성전자는 세제 혜택을 본격적으로 받은 2008년부터 휴대폰 생산 라인을 중국 등 해외로 이전했다. 투자와 고용을 늘려줄 것으로 기대한 정부의 바람과 정반대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한때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생산하는 휴대폰 수는 1억대에 육박했지만 지금은 3300만대 수준으로 급감했다. 휴대폰 국내 생산량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삼성전자는 2010년 매출액이 154조원에서 2013년 228조원으로 47.9%가 늘었고, 당기순이익도 16조원에서 30조원으로 88.9% 늘었다. 그러나 이 기간 정규직 인원은 도리어 362명이 줄었고, 계약직만 36.3% 증가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정규직 인원은 9만3928명으로, 전년에 비해 3000명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2011년의 정규직 인원인 10만353명에 비하면 무려 6425명이나 줄었다. 반면에 해외에서 고용하는 인력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스마트폰·태블릿PC를 생산하는 베트남 제2공장을 본격 가동했다. 더 나아가 제2베트남 공장 생산인력 4만명을 추가 고용할 계획이다. 스마트폰과 부품을 주로 생산하는 베트남 제1공장 옌퐁에서 3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직접 고용 인원만 7만명이 넘는다. 삼성전자를 따라 베트남에 동반 진출한 협력업체 50여개사가 고용하는 인력까지 합하면 12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휴대폰 생산 원조인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고용인원은 9500명에 불과하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스마트폰 생산량을 늘리면서 지난 2012년부터 베트남 전체 수출 비중의 10%를 넘어섰다. 작년에는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18% 이상 비중을 차지했다. 삼성전자 덕분에 베트남 주력 수출품은 스마트폰이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쌀과 커피를 주로 수출했던 베트남은 이제 최첨단 스마트폰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삼성전자가 베트남 국민 기업이 된 셈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인사전략 평가 기관인 우수고용협회(Top Employers Institute)로부터 2014 브라질 최고 고용기업으로 선정됐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인사전략 평가 기관인 우수고용협회(Top Employers Institute)로부터 2014 브라질 최고 고용기업으로 선정됐다.>

삼성전자는 또 글로벌 인사 전략 평가 기관인 우수고용협회(Top Employers Institute)로부터 2014 브라질 최고 고용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해외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인정받는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면서도 “다만 국내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다소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제조업 해외 진출 불가피 주장…반대로 캐논·GE는 유턴

삼성전자는 제품 경쟁력을 위해 해외 투자·고용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경제계뿐 아니라 학계도 삼성전자의 이 같은 논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생산 원가를 줄이기 위해 단순 생산 등 저임금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는 것에는 전문가들 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연구개발(R&D) 등 고급 일자리뿐 아니라 자동화 핵심 기술까지 해외로 유출하는 것은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 휴대폰 출하량 중 국내 생산 비중은 7~8% 수준에 불과하다. 매년 국내 생산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일본 제조 업체들이 해외 투자와 국내 투자를 병행해 자국 산업 발전을 위해 힘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일본 제조 업체들은 고급 일자리를 국내에 남기고 저임 일자리는 해외로 옮기는 이원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캐논은 내년까지 컬러 복합기·카메라 등 고부가 제품의 자국내 생산 비중을 42%에서 50% 이상 수준으로 늘린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도 10억달러 규모의 신규 가전 공장을 켄터키주 루이빌에 건설했다.

최근 우리나라는 자유무역협정(FTA), 다자간 무역협상을 확대하면서 관세 장벽을 크게 낮췄다. 산업 자동화로 단순 생산직을 대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재도약하려면 삼성전자의 국내 투자가 절실하다.

제조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산업이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며 오바마 정부는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조업 부흥에 힘을 쏟고 있다. 덕분에 최근 미국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고 있으며, 대외 수지 개선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제조업은 수출로 내수 시장 외연을 확대하고, 연관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연관 산업이 커지면 고용은 늘고, 경기 효율성도 높아지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공장이 자국 내에 있어야 핵심 기술 유출도 방지할 수 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철저하게 제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일본 기업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국 제조업 발전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한 대학의 경제학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삼성전자 내 전문 경영인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단기 성과 중심의 의사결정이 빈번해졌다”며 “베트남·중국 등 해외에 스마트폰 생산을 집중하는 전략은 나중에 상당한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jeb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