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한 450㎜ 웨이퍼 시대…민관 공동 R&D 전략도 고심 깊어져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차세대 450㎜ 웨이퍼 도입을 미루면서 우리 정부와 후방 장비업계도 대응 전략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당초 수년 뒤 상용화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최근 2010년대에는 450㎜ 웨이퍼 시대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관측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현 300㎜에서 450㎜ 웨이퍼 공정 전환에 필요한 장비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이를 활용하는 수요 기업 모두 관망세를 취하고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처럼 장비 업체는 시장 수요가 없으니 개발에 소극적이고, 반도체 기업은 막대한 투자 비용을 상쇄할 이점이 적다는 이유로 조심스럽다. 글로벌 장비업체 AMAT 최고경영진은 최근 “오는 2019년까지는 주요 고객사 가운데 차기 웨이퍼 도입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노광기 업체 ASML은 450㎜ 웨이퍼 공정 연구개발(R&D)을 일시 중단했고, 주요 반도체 업체도 구체적인 도입 움직임이 없다.

자연스레 우리 정부의 반도체 공정·장비 R&D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0월 반도체 산업 재도약 전략을 내놓으면서 대구경화에 대응하는 450㎜ 장비 개발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과거 200㎜에서 300㎜ 웨이퍼 전환 과정에서 미리 준비하지 못해 겪은 어려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산업부는 지난해 정부 R&D 과제로는 처음으로 450㎜ 웨이퍼용 세정복합장비 개발 과제를 시작했다. 올해도 ‘글로벌 협력형 450㎜ 공정장비 개발’ 과제를 공고하고, 다음 달 중순 수행기관을 선정할 예정이다.

문제는 향후 R&D 사업이다. 당초 웨이퍼 대구경화에 따른 공정 장비 재편 시점을 오는 2018년으로 예상했지만 지금은 확산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정부는 하반기 이후 차세대 웨이퍼 R&D 사업 방향과 규모 등을 놓고 고민 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움직임이 바뀌는 것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R&D 과제를 기획하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관계자도 “당초 적극적으로 (45O㎜ 웨이퍼 R&D 사업을) 하려 했던 방침을 재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450㎜ 웨이퍼 사업 지원 폭과 속도는 조절하더라도 근본적인 기조는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도입 시기가 지연되더라도 450㎜ 웨이퍼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부 과제에 참여 중인 반도체 장비업체 피에스케이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G450C(450㎜ 웨이퍼 장비 개발 국제 컨소시엄)와 장비를 테스트 중”이라며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450㎜ 웨이퍼 장비 개발 사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로서는 R&D 투자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하는 것이 고민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면 450㎜ 웨이퍼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지만 한정된 정부 예산을 감안하면 최근의 추세 변화가 부담스럽다. KEIT 반도체 공정·장비 PD실 관계자는 “국내외 여러 상황을 감안해 450㎜ 웨이퍼 장비 개발 로드맵을 수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G450C를 주도하는 기업 중 한 곳인 인텔은 이날 전자신문에 “450㎜ 웨이퍼의 개념·타당성·시제품 등을 계속 검토할 것”이라며 “상용화 시기는 2015~2020년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