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출연연 미션의 ‘겉과 속’

[데스크라인]출연연 미션의 ‘겉과 속’

최근 정부가 정부출연연구기관 미션을 전면 재정립하기로 하고, 김창경 한양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고유임무 재정립 위원회’를 가동시켜 관심을 끌고 있다.

거대공공, 에너지환경, 첨단융합, 주력기간, 생명복지 등 5개 분야별 전문위원회가 움직이고 있다. 6월이면 결과도 나온다.

그동안 정부와 출연연구기관이 대체로 공감하던 부분이 대학은 기초연구, 기업은 돈되는 연구, 출연연은 그들이 손대기 어려운 중간지대 연구, 즉 공공성에 기반을 둔 고위험 국가 R&D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지금 그 인식이 무너지고 있다. 출연연 미션의 겉과 속이 생기면서 부터다. 속내를 보면 ‘R(research)’는 어디가고, ‘D(development)’와 ‘사업화’만 남은 형국이다.

“혁신은 과거의 반성에서 출발해 조직을 설계하고, 그에 맞는 미션이 정해져야 하는데 미래부는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창조경제만 하고 있다. 단순 경제논리로 미래부와 출연연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과학기술계의 ‘미스터 쓴소리’로 통하는 손진훈 충남대 교수의 얘기다. 출연연 미션을 따져보기 전에 미래부 미션은 잘 정리돼 있는지 먼저 되돌아보자는 주장이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찾았던 독일 드레스덴에 대해 덜 알려진 것이 하나 있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 얘기다. 프라운호퍼가 드레스덴에 분원을 내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맞지만, 연구소 연구원들이 직접 나서 제품을 만들고, 팔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연구소가 만들어지자 근처로 기업들이 모여 들었고, 자연스레 산업군이 형성되면서 드레스덴을 먹여 살리게 됐다. 기술사업화는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 가도록 시스템을 정부가 만들어 주면 되는 일이다.

출연연을 축구 국가대표 팀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2002년 월드컵 4강신화를 만들어낼 때 히딩크라는 명장을 영입하고 투자도 대대적으로 늘렸다. 처음엔 ‘5대0’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얘기도 들었지만, 꾸준히 투자하고 기다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히딩크는 그들에게 축구를 잘해달라고만 요구했다. 제품 얘기는 안 꺼냈다.

러시아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대륙간탄도탄(ICBM)을 개발하는 데는 대학의 역할도 컸지만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는 1500개나 되는 연구기관이 밑거름이 됐다.

러시아는 “길거리서 자동차 보닛을 열어 차를 고칠 수 있는 수준 높은 엔지니어가 100만명도 넘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에 공을 들인 덕분에 물리학·생물학·화학·수학 등 기초순수과학 분야는 물론이고 우주공학·생물공학·화학공학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전 세계서 우주정거장을 운용중인 유일한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노벨상도 26개를 보유하고 있다.

출연연은 창조경제의 밑거름이 돼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당장 돈 되는 연구만을 지향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10년, 20년 후를 내다본 원천, 대형 먹거리를 봐야한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국 린든 존슨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고 묻자, 돈도 다 필요 없고 미국 같은 최고의 연구소를 지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기관이 대한민국 과학기술과 산업기술의 초석을 놓은 과학기술연구원(KIST)이다.

우리나라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할 때 수출은 5400만달러였다. 지난해 수출액이 5596억달러다. 1만배 넘게 성장했다. 그 성장의 이면에는 과학기술과 밤낮없이 연구에만 몰두했던 과학기술인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