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망 부재, 우왕좌왕 사고현장···재난망 표류 우려 현실로

재난망 부재가 키운 '세월호' 인명 구조

세월호 사고와 관련, 미흡한 초동 대처와 체계적이지 못한 현장 대응이 비난의 도마에 오르면서 12년째 표류 중인 국가 재난망 사업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사고 현장에서 일사불란한 통신망 부재로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등 비효율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끔찍한 재난이 예고 없이 찾아오면서 그동안 재난망 부재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관별 통일된 무선통신망과 재난대응 체계 없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할 수 없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20일 소방방재청과 무선통신 업계에 따르면 진도 팽목항에 통신 통제반이 구성됐다. 통제반은 서울과 경기지역 재난망에 쓰이는 테트라 기반 주파수공용통신(TRS) 무전기와 기지국 등으로 지휘통신체계를 꾸렸다. 현장 구조에 투입된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해군, 지자체, 민간단체의 지휘부 간 협업을 위한 통신망 구성이 목적이다.

해양경찰청은 KT파워텔의 아이덴 방식 TRS를, 각 지자체는 아날로그 방식인 초단파(VHF)와 극초단파(UHF) 망 등 서로 다른 통신망을 쓰고 있다. 긴급한 상황인데도 상황 전파와 보고, 지시를 휴대폰으로 하는 실정이다. 소방방재청이 급하게 지휘통신 체계를 꾸린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세월호 사고 발생 접수 후 약 한 시간이 지나서야 해경 헬기가 현장에 도착한 것과 구조과정에서 해경과 해군 등이 일사불란하게 구조 활동을 펼치지 못한 점은 통일된 지휘통신망의 부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고 초기 탑승객과 구조 인원 수를 파악하는 데 혼선을 빚은 것도 상이한 보고 체계 탓이라는 설명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구조인원을 350명에서 164명으로 정정하는 등 사고 초기 정확한 통계를 내놓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은 정부 구조단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민간 잠수부의 수중 작업을 위해 조명탄을 요청하면 허가를 받는 데 걸리는 시간만 20분을 포함해 40분 넘게 걸린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 역시 통일되지 않은 보고와 지휘체계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현재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고 피해 규모와 구조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 중이다. 하지만 해양수산부와 안전행정부 등 각 기관 상황실과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실종자 가족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재난망을 핵심으로 하는 대응 시스템과 매뉴얼 등 총체적인 사고대응체계 부재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한 무선통신업체 관계자는 “국가 재난망이 갖춰진다고 하더라도 사고를 원천적으로 예방하기는 어렵다”며 “피해를 최소화하고 구조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한 대응과 이를 위한 통일된 무선통신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사고가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5년부터 서울과 경기지역에 국가통합망(GRN)이란 이름으로 재난망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2008년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논란과 투자비 과다에 대한 감사원 지적에 따라 사업이 중단됐다. 이후 안전행정부로 업무가 이관돼 지난해 초부터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결과 발표가 계속 미뤄지면서 ‘국민 안전은 뒷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편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20일 오후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정부는 이날 진도군청 범정부대책본부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이 결정한 뒤 청와대 재가를 거쳐 안산시와 진도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결정했다.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면 응급 대책과 재난구호, 복구에 필요한 행정·금융·의료 분야 등에서 중앙 정부의 특별지원을 받게 된다. 또 취득세와 등록세 등 지방세가 면제되고 건강보험료는 최장 6개월 동안 30~50% 경감된다. 전기·통신료 인하 등의 혜택도 주어진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