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삼성전자와 제5부

우리나라에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맞짱’을 뜨면 누가 웃을까. 지난달 20일 청와대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통해 주목받은 ‘천송이 코트’ 논란에서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보자. 후자의 승리다. 정부가 시장과 자본권력에 사실상 손을 들었다. 집권 1년차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를 바탕으로 군기 잡기에 나섰던 지난해와 사뭇 다른 국면이다.

대기업과 재벌이 수조원의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고 풀지 않자 정부는 ‘규제개혁’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더 이상 ‘돈맥경화’를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서다. 정글에 사자가 나타나자 천적 관계인 동물들이 나무 위로 피신해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들은 먹을거리와 전투식량을 챙겨 소나기가 그치기만 기다렸다. 어쩌면 5년마다 되풀이되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체득한 자기보호 본능일지 모른다. 실제로 10대 대기업은 무려 477조원에 달하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고 밀림의 왕자가 물러가기만 기다렸다. 어설픈 투자와 지출은 세무조사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시장의 편이고 조급한 쪽은 정치권력이다.

또 다른 질문 하나. 이번에는 언론과 자본권력이 맞서는 경우다. 신문방송학 개론서에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어 ‘제4부’로 불리기도 하는 언론의 오늘날 현실은 어떤가. 특히 자본권력 중 삼성전자와 언론이 마주보고 달린다면 어떻게 될까. 자본권력의 우세다. 벌써부터 자본권력에 아양 떠는 몇몇 언론사를 보라. 그리고 그 언론에 몸담고 있는 일부 기자의 용비어천가 식 기사나 칼럼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런 자신감이었을까. 최근 삼성전자는 대결의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갤럭시 S5 렌즈 수율 기사를 둘러싼 본지와 삼성전자 간 논쟁이 요즘 저녁 술자리의 단골 메뉴가 됐다. 적어도 홍보 담당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다. 소송이 시작됐기 때문에 팩트에 대한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대응법이다. 우선 정정보도문을 요청하는 방법론이다. 삼성전자는 21면에 게재한 기사를 놓고 사과문 수준의 내용을 적시해 해당 면이 아닌 1면에 게시하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관행화된 언론중재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소송으로 직행하겠다는, 누가 봐도 극단적 선택이라 할 만했다.

거대 자본권력으로 등장한 삼성의 대언론관을 보여준 것일까. 궁금증이 인다. 누구의 결정이었을까.

어느 조직이든 매파와 비둘기파가 존재한다. 매파의 논리가 주류를 형성하면 비둘기파는 사회적 고립감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주류 논리에 편승하게 마련이다. 이른바 ‘침묵의 나선이론’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현대사회에서 제4부로 불린다. 국가권력 기관을 감시한다는 측면에서 감시견에 비유된다. 그런데 이번 논란과 관련해 삼성전자의 접근법은 이해하기 힘들다. ‘닥치고 소송’ 식의 접근은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조건 오보라고 단정짓고 소송부터 하겠다는 것이다. 품종개량을 통해 애완견이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왜 이렇게 급한가.

‘세월호’에 대한 부처 간 대응이 이해가 가지 않듯이 미디어를 바라보는 삼성의 대언론관을 다시 한 번 주시할 필요가 있다. 어떤 특별한 목적 때문에 언론 길들이기를 우선적으로 시도하는 것은 아닐까. 삼성이 ‘제5부’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