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핵연료 원천기술과 국가 경쟁력

[ET단상]핵연료 원천기술과 국가 경쟁력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 무역수지 총액 1조달러, 2013년엔 경상수지 흑자규모 700억달러를 넘어선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2011년 우리나라 기술 무역수지 적자가 59억달러를 기록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 낯 뜨거운 결과는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원천 기술이 적어서 우리가 받는 것보다 외국에 내줘야 하는 기술료가 더 많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미래에 우리 경제가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질적 수준이 차별화된 고난도 기술을 갖추고 기술 시장에 적극 진출해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모방해 흡수하는 추격형 모방연구에서 탈피해 세계를 선도하는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열린 제3차 네덜란드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우리나라가 독자 보유하고 있는 원천 기술을 적용하는 5개국(한국, 미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공동 프로젝트 선언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전 세계 고성능 연구용 원자로에서 사용 중인 고농축(HEU) 핵연료의 연간 사용량은 핵무기로 전용하면 매년 핵폭탄 24개를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가공할 위험을 안고 있다. 국제 사회는 이러한 HEU 사용을 감축하기 위해, 한국이 원천 보유하고 있는 원심분무기술로 제조된 고밀도 저농축(LEU) U-Mo 핵연료를 5개국이 공동으로 개발 및 검증시험을 거쳐 선진 각국의 고성능 연구로에 사용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한국만이 보유한 명품 기술력으로 국제 핵안보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세계의 조류와 인류의 염원에 부응하는 신뢰성 있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게 됐다. 평화 국가라는 국가 이미지의 구축과 국제 사회의 신뢰 제고 효과는 결코 단순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커다란 부수적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원천기술을 통해 얻는 이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자로에서 사용되는 핵연료는 비유하자면 잉크젯 프린터에서 카트리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하지만 한번 핵연료로 채택되려면 그 운용 주체가 최고의 기술적 안전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또 10년 이상의 신뢰도 높은 성능 검증을 거쳐야만 한다. 우리의 원심분무기술로 제조된 U-Mo 핵연료는 다행히도 지금까지 안정적인 핵연료로서의 성능을 보여주고 있어 그 실용화 전망이 매우 밝다.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부산 기장에 건설 중인 수출주도형 15㎿급 연구로에도 우리가 보유한 원천 기술인 고밀도 저농축 U-Mo 핵연료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할 예정이다. 2017년 가동을 목표로 수출용 신형연구로 핵연료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U-Mo 핵연료 검증시험을 국제 사회와 공조로 추진 중이다. 미국 정부도 이 검증시험에 국가 예산을 들여 적극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 기술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고밀도 저농축 핵연료에 대한 국제 공동 검증시험들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우리의 원심분무기술이 세계 표준기술로 채택됨과 아울러 가까운 장래에 연간 5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전 세계 연구로 핵연료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원천기술이 글로벌 핵비확산과 창조경제 실현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종만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jmpark@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