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 전기차 사기 너무 어렵다

공동주택에 충전기·주차공간 구축은 주민 동의서 있어야

제주에 사는 김 모씨(30)는 지난달 정부의 전기차 민간 보급 사업에 따라 차량 구매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구비해 자동차 대리점을 찾았다.

하지만 김 씨는 발길을 집으로 돌려야 했다. 주거지 내 전기차 충전기 설치공간 확보에 필요한 아파트 주민 동의서가 누락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충전기를 포함한 전용 주차장 구축에 필요한 (아파트) 주민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일일이 주민을 찾아 동의서를 받아내는 게 너무 어려웠다”며 “관리사무소 동의는 얻었지만 개인의 전기차 구입을 위해 공동시설물을 점유한다는 이유로 다수의 주민이 반대해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23일 제주도에 따르면 전기차 민간 보급 사업에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거주 주민의 전기차 구매 신청률이 20%에도 못 미쳤다. 전기차 민간 보급은 환경부 국비보조금(1500만원), 지자체(300만~900만원)와 700만원 상당의 완속충전기, 충전설비 구축비까지 지원받게 된다. 그 대신 신청자는 주거지역 내 완속충전기 운영과 충전공간이 가능한 주차장을 확보한 후 해당 완성차 업체 대리점을 찾아 최종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단독주택에 비해 수가 월등히 많은 공동주택 거주자가 다른 거주자의 동의서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정부의 보급 정책과 일관된 충전기 구축 의무화 등 충전인프라 지원정책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연대 르노삼성 제주지점장은 “지난 3월 526명이 자사 전기차 구매를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대다수가 개인주택 거주자였다”며 “주민 동의서 확보가 어려운 이유로 300~400명의 주민이 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주에 이어 최근 민간 보급을 실시한 다른 지자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창원시는 지자체 처음으로 신청자의 주거지와 실제 주차장 장소가 일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별도의 규정을 마련해 공동주택 신청률을 독려했다. 실제로 최근 발표한 창원시 민간보급에 아파트나 공동주택의 신청자가 대거 선정됐다. 하지만 실제 주거지가 아닌 외부 장소에 충전·주차장을 확보하고 있어 적지 않은 불편함이 예상된다.

창원시 관계자는 “이달 초 100대 전기보급 사업에 법인사업자를 제외한 82명의 민간이 보급 사업에 선정됐고 이 가운데 50%가 아파트 거주자로, 이들 대부분이 주거지와 다른 장소에 충전·주차장을 확보한 신청자”라며 “창원은 아파트 거주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주거지와 주차장 장소를 이원화하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기차 업계는 정부의 적극적인 보급정책과 함께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전기차 충전·주차장 설치 의무화 등 충전인프라 조성에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환경부는 올해 광주와 당진, 포항 등 지자체에 1000대 가까운 전기차를 보급할 계획이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