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메시지 기다리는 삼성전자 직원들

“출장 다녀오신 회장님 말씀이 곧 ‘새 경영지침’이죠.”

22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출근하며 ‘출근경영’ 고삐를 조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삼성전자 직원의 말이다. 불확실한 경제, 혁신 갈망, 구조조정 등의 파고를 헤쳐야할 삼성 임직원들에게 이 회장 ‘메시지’는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초부터 꾸준히 ‘혁신’을 귀국 메시지로 내세웠다. 1993년 6월 “불량생산을 범죄로 규정한다”는 프랑크푸르트 선언 후 귀국 즉시 그룹 임직원들을 모아 ‘질 경영’ 특강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가운데 ‘조기 출퇴근제’(7시 출근, 4시 퇴근)는 이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시행됐다. 삼성과 협력업체뿐 아니라 외부 기업으로 확산되면서 ‘삼성표 경영혁신’ 사례가 됐다.

2000년대 들어 이 회장의 혁신 주문은 더욱 강해졌다. 2000년 4월 귀국 후 전자 분야 사장단을 삼성 영빈관 승지원에 모아 “세계 시장 1위 유지 및 진입을 위한 전략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중장기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이 회장이 사장들에게 지목한 반도체(D램), TFT LCD, PDP, 이차전지 등은 선제적 투자와 그룹사 간 공조 강화에 힘입어 세계 1위를 거머쥐었다.

2003년 7월에는 북유럽에 다녀온 뒤 수원사업장에서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를 열고 “소프트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라”며 디자인·브랜드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강화를 주문했다. 직접 유럽과 일본에서 구입한 첨단 휴대폰, TV 등 전자제품 20여점을 전시하며 삼성 제품의 ‘세계 일류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과거 ‘저가’ 이미지였던 삼성 제품이 오늘날 ‘세계 명품’ 반열에 오른 것은 이 회장의 ‘월드 베스트’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배정 사건 등으로 삼성에 대한 여론이 따갑던 2006년 2월에는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적으로 책임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제경쟁이 하도 심해 상품 1등하는 데만 신경을 썼는데 국내에서 (삼성이) 비대해져 느슨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밝혀 삼성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지와 위기 돌파를 직접 챙길 것임을 공언했다.

중국 시장에 대한 견제 필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2001년 10월 중국 쑤저우 공장에서는 직접 냉장고 문을 여닫은 뒤 품질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중국에 대한 자만심과 우월감에 빠져 있는 것 같은데 소비자들한테 큰코다친다”고 경고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중국의 추격을 언급하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2011년부터는 신입사원 채용 시 중국어 자격 보유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등 그룹 전체가 중국 공부에 나서기도 했다.

최근에는 ‘위기론’을 강조한다. 2010년 경영 복귀 후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 “세상의 변화속도가 워낙 빠르다” “더 정신을 차리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그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 시리즈 성공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으로 최근 그룹 전체에 불고 있는 ‘마하 경영’의 토대가 됐다.

한 삼성전자 임직원은 “올 초 채용제도 개선 실패,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과 구조조정으로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서초동 출근’을 시작한 이건희 회장이 내놓을 해법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