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삼성, 로비에 뭉칫돈 뿌렸지만…

삼성전자가 지난 1분기에만 미국에서 쓴 ‘로비 달러’가 총 147만달러로 사상 최고액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석 달간 쏟아부은 돈이 작년 전체 로비 집행액을 뛰어넘는다. 같은 기간 애플의 로비액보다 많다. 애플과 2차 특허소송 평결을 앞두고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미국 입법부와 행정부를 상대로 대대적인 로비를 벌인 정황이다. 현지 전문 로비업체인 ‘에이킨 검프’를 동원해 미 상·하원과 상무부(DOC), 국제무역국(ITA), 특허청(PTO), 무역대표부(USTR) 등에 전 방위적 로비를 펼쳤다. 본지가 미 의회로부터 단독 입수한 ‘2014년도 1분기 로비내역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사실들이다.

미국은 로비를 합법화한 나라다. ‘로비공개법’에 따라 입법부·행정부를 상대로 한 모든 로비스트는 의회 등록을 의무화하고, 그 활동 내역을 정기적으로 서면 보고해야 한다. 막대한 로비 자금을 투입하면서 애플과 특허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삼성전자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한다. 오죽하면 고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기회로 삼아 애플을 공격해야 한다고 내부 임원진이 이메일까지 주고받았겠는가.

하지만 삼성전자가 투입한 거액의 로비 자금이 미국 내 우호적인 여론 형성에 얼마나 약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고향에서조차 인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애플과 특허전을 벌이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국내 협력사들을 혹독하게 쥐어짜기로 원성이 자자하다. 스마트폰 사업 채산성이 낮아졌다고 하나 삼성전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이익률을 자랑한다. 이 사이 국내 협력사는 극심한 마진 압박에 고통이 점점 가중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얼마 전 갤럭시S5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다며 본지에 소송을 걸었다. 애플과의 지루한 소송에도 확실한 승전보를 올리지 못하면서 자국 내 미디어를 상대로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석 달간 147만달러는 삼성전자에 소액일 수 있다. 하지만 협력사 납품 단가를 한 푼이라도 더 깎아 만든 돈이라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삼성전자가 국내 후방 산업계와 동반 성장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애플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든든한 우군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