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산업기술보호는 안전과 비슷, 당장 피해는 없지만 한번 유출되면 기업존망 결정"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0~2012년)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누적 피해액은 5조2863억원에 달한다. 최근 우리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이 급상승함에 따라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표적이 되고 있다. 기술유출 기법도 갈수록 지능화하는 양상이다. 반면에 기술유출을 당한 중소기업 절반 이상은 인력·예산 부족을 이유로 소송 등 법적인 구제절차 신청을 포기하는 실정이다. 중소기업 기술유출 실태를 진단하고 산업기술 보호 강화를 위한 대책을 모색하고자 지난 7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대·중소기업 보안역량 동반성장을 위한 좌담회’가 열렸다.

`대·중소기업 보안역량 동반성장을 위한 좌담회`가 지난 7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렸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대·중소기업 보안역량 동반성장을 위한 좌담회`가 지난 7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렸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참석자

김종국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유법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시장과장

윤진혁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장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전명갑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부회장

한민구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유출 및 침해 등 비정상적 기술거래로 발생하는 기술경쟁력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된 현황과 사례는 어떻게 되나.

◇윤진혁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장=중소기업청이 기술유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최근 3년간 국내 중소기업의 12.1%가 기술유출 피해를 당했다. 기업당 평균 피해규모도 약 15억원으로 상당히 크다.

또 조사대상 기업 12.9%가 거래를 하고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회사의 중요 보유기술을 전달하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간 협력 관계에서도 이런 요구를 받는 것이다.

실제로 한 중소기업은 국내 굴지 대기업과 ATM을 공동으로 개발했다. 해당 중소기업은 자연스럽게 대기업에 기술을 제공했고 대기업은 이 기술을 빼돌려 자체 제작에 나서고 중소기업과는 계약을 파기했다.

이 문제로 법원에서는 대기업의 잘못을 일부 인정했으나 대기업은 끝까지 부인하며 항소를 했다. 중소기업은 계약관계에서 약자일 뿐만 아니라 소송을 하더라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어려워한다. 중소기업 경영에 존폐가 걸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대·중소기업 간 협력 관계에서 기술 이전도 탈취라고 볼 수 있나.

◇윤진혁=사실 애매모호한 부분도 있다. 신제품 개발 시 참여기업 간 상호 협력이 없으면 안 된다. 하지만 보호해야 할 부분은 보호해야 한다. 현장에서 업무를 하며 실제로 겪은 경험도 있다. 한 해외기업은 제품 제작 기준을 서너 개 업체에 제출하고 그 중 가장 생산성 좋은 업체에 첫 물량을 주문한다. 그 이후 생산율을 올린 방안을 제출받아 다른 두세 개 업체에 지도라는 명목으로 전달한다. 선도 기업의 생산기술이 고스란히 다른 기업에 넘어가고 대기업 입장에서는 전체 납품단가를 하락시키는 효과를 얻는다.

◇사회=그렇다면 기술유출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 볼 수 있는가.

◇한민구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장=정부의 지속적 노력으로 관련 법·제도는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기업의 의식수준은 제도에 비해 미성숙하다. 좋은 제도와 시스템이 있더라도 운영하는 기업이나 사람들의 의식이 부족하면 소용없다. 법·제도도 중요하지만 기술 보호 문화를 기업문화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중소기업은 경영여건이 어려운 사례가 많기 때문에 보안 전담부서를 두거나 투자를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윤진혁=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술보호 관련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관련 예산이 몇 년 동안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안다. 예산을 늘리고 전담부서와 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회=결국 업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창조경제를 위한 산업 전반의 기술보호 수준을 높이려는 정부 대책에는 어떤 것이 있나.

◇유법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시장과장=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산업부 한 기관이 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중소기업청과 특허청 등 유관기관이 공동으로 활동을 펼치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의 예산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과거 기술유출이나 기술보호에 인식이 낮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전반적인 산업발전으로 기술유출 인식이 많이 발전했다. 정부도 중요도를 인식하고 2007년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등 전반적인 제도 정비를 했다. 기술 침해나 유출에 강력한 처벌근거도 마련했다. 최근에는 기술유출 피해를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고자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도 설치했다.

핵심기술은 해외로 유출될 때 국가 안보 및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8개 분야 55개 기술을 국가 핵심 기술로 선정해 관리 중이고 수출 사전신고 관리규정 제정 등 다양한 보호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사회 전반의 인식을 제고하고자 기술유출 처벌을 강화하면서 핵심기술 유출이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을 넓히고 있다. 중소기업의 산업기술보호 역량을 강화하려 교육이나 다양한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김종국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대기업 입장에서는 중소기업의 설계 능력을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해당 목적에만 이용하지 않고 자기들이 이용하면서 거래처를 끊는 것이다.

중소기업청 제도 중 기술임치제도라는 것이 있다. 동반위가 위탁해 수행하는 것으로 중소기업이 가진 기술도면을 저장장치에 담아 동반위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제품의 기술을 탈취당할 염려가 있다면 금고에 보관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자가 함께 찾아와 동반위 직원 입회 하에 같이 보고 다시 넣으면 된다. 또 설계 도면을 대기업에 직접 가져다주지 않아도 기술 보유 증명서도 끊어준다. 2008년 28건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누적 보관 기술 건수는 1만건이 넘었고 현재 6200건 정도의 기술을 보관 중이다.

◇사회=2007년부터 제도적 정책을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기업경영 현장에는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대책은 있는가.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우리나라의 제도 자체는 잘 갖춰져 있는데 중소기업이 인지하거나 활용하는 사례가 아주 적다. 최근 중소기업청에서 관련 실태조사를 한 결과 정부의 기술보호제도를 알고 있다는 응답은 절반에 불과했다. 기술보호제를 이용하지 않고 있는 이유의 4분의 1은 비용부담이었고 절반 가까이가 잘 몰라서였다. 기술보호제도 자체가 기업이나 국민에게 인지도가 낮다. 정부나 경제단체에서 홍보나 교육으로 인식제고 활동을 펼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술유출피해보험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2011년 정부가 검토를 했다가 예산문제로 보류가 된 사안이다. 중소기업이 일정액을 납부하면 기술유출 피해 발생 시 손실을 보전받을 수 있는 제도다. 아무래도 중소기업에 재정적 부담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보험료 일부를 부담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예산 문제로 보류됐다. 최근 기술유출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논의될 필요가 있다.

◇사회=중소기업의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피해보험제도는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산업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유법민=비슷한 제도로 지식재산권 소송 지원 제도를 특허청에서 하고 있다. 지재권이 아닌 다른 사안에서도 별도 지원이 필요한지 검토해보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생존에 우선순위가 높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는 산업기술 보호, 유출 문제 등이 중소기업 의사결정에서 미치는 영향이 적다. 정부가 다양한 지원제도를 개발하더라도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사례가 많고 관심에서도 멀어진다. 보험까지 들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라 본다.

◇사회=중소기업 기술보호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검토되어야 하는데 추가 방안은 무엇이 있나.

◇전명갑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부회장=협회에서 하는 일은 민간 차원에서 일반 기업과 접촉해 현장 고충을 수렴하고 직접 지원하는 것이다. 중소기업 인력에 교육 사업을 위주로 실시해왔다. 현장교육, 위탁교육 등을 실시해 기업 임직원의 인식과 역량을 기르고 보안관리사 자격증 제도도 운용해 전문 인력을 기업에 공급했다.

사실 대기업은 자체 시스템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대부분 예산 문제 등으로 보안에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협회에서는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의 기술유출을 막고 보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시스템 무료 관제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1200여개 중소기업의 홈페이지 및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관제해 보안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사회=중소기업은 기술유출 소송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시간적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중소기업의 피해상황은 어떤가.

◇이동근=소송 과정에 따른 비용과 시간 소요에 많은 중소기업이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배상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과의 거래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2012년 대한상의 조사 결과 기술유출 피해가 있을 시 소송이나 분쟁조정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는 대답은 25%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포기하거나 구두로 개선을 요구하는 정도에 그쳤다.

◇한민구=지식재산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지재권 침해대응 연평균 비용이 대기업은 9755만원, 중소기업은 3631만원으로 집계됐다. 중소기업의 53.4%는 인력과 예산부족으로 사법적 구제절차 신청을 포기했다. 44%는 소송 등의 절차를 거쳐도 실효성 있는 손해배상을 받기 힘들다고 대답했고 22.2%는 절차가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든다고 답했다.

기술유출로 발생하는 기업이미지 손실 등도 문제지만 긴 소송기간 동안 입는 시간적, 정신적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다양한 요인으로 중소기업 스스로가 사법적 절차를 밟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다.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는 기업 및 개인이 겪는 기술유출분쟁을 법원에 가기 전에 신속하게 해결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민원이 신청된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위원회에서 대답을 해줘야 하고 아주 저렴한 비용에 소송보다 처리가 신속하다. 비밀이 철저히 보장되면서 전문성을 가지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당사자 간 타협과 조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장점이다.

◇사회=대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시장을 이끌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면 대기업의 책임과 중소기업의 대응전략,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정부는 별도 대책을 준비하고 있나.

◇유법민=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문화가 완전히 정착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중소기업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물적, 인적 자원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추가적 비용이 아니라 대기업 제품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로 바라봐야 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려운 현실적 상황이지만 기술유출이 기업의 존망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에만 의존하려 하지 말고 자체적인 보안의식과 역량을 CEO 차원에서 제고해야 한다.

정부도 대·중소기업 협력이 활발한 업종을 중심으로 기술보안 협력 우수사례를 발굴해 다른 산업에도 전파할 수 있도록 행사를 추진 중이다. 이달 디스플레이 분야를 시작으로 대기업과 협력사가 기술유출 보안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발표할 예정이다.

◇사회=마지막으로 대·중소기업 간 기술분쟁에 추가 제언이 있다면.

◇한민구=산업기술보호와 안전은 비슷하다. 당장 피해는 없지만 한 번 터지면 피해가 막심하다. 평소에 주체별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윤진혁=보안 지출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개념을 바꿔 생각해야 한다.

◇전명갑=디지털기술 발달에 따른 보안대책도 중요하다. 협회에서는 올해 무료 관제 대상 업체를 2000개로 확대하고 분쟁 전초단계에서 포착되는 징후에 디지털 포렌식, 클라우드를 활용한 대기업과 협력사 간 자료전달체계 구축, 빅데이터를 활용한 산업기술유출 사전예측 등을 준비 중이다.

◇김종국=기업문화 조성이 중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기술을 존중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른다는 문화와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이동근=기업 정책과 관련해 정부에서는 그동안 기술개발 위주 정책이 많았다. 기술보호에 지원과 관심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정부에서 기술보호의 제도 지원과 예산 확보에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한다.

◇유법민=중소기업 관련 법률과 예산지원 사업이 다양하다 보니 수요자인 중소기업이 실질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것 같다. 오늘 제시된 의견을 잘 수렴해 정책 수립에 활용하겠다.

정리=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