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이용한 세포 리모콘…특정 단백질 묶는 기술 개발

빛으로 세포 내 특정 단백질 기능을 원격조종하는 원천기술이 개발됐다. 원하는 시간, 원하는 곳의 특정 단백질을 즉시 고정할 수 있어 암세포나 신경세포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포에 청색광을 쬐어 특정 단백질 기능을 저해하면 세포의 모양을 줄였다 늘였다 하며 조절할 수 있다.
세포에 청색광을 쬐어 특정 단백질 기능을 저해하면 세포의 모양을 줄였다 늘였다 하며 조절할 수 있다.

허원도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연구단 박사(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세포 내 단백질을 가둬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광유도 분자올가미(LARIAT)’ 기술을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세포의 이동·분열 등 중요 현상을 약물 처리 없이 빛으로만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다. 빛을 켜고 끄는 것만으로 모든 과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다. 광수용 단백질을 삽입해 빛에 반응하도록 조작한 세포에 청색광을 가하면 1초 내에 분자올가미가 형성된다. 반대로 빛을 끄면 10분 내에 올가미가 완전히 사라진다.

빛의 세기·파장·간격을 조절해 올가미 형태나 강도를 달리할 수도 있다. 원하는 세포에만, 세포 내에서도 특정 부위에만 빛을 쬐어주면 선택적으로 적용 가능하다.

기존에 세포 내 단백질을 붙잡아 관찰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약물 처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대상이 죽거나 다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한번 가공하고 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당장 암세포 내 특정 단백질 기능을 조절하고, 세포 분열을 멈추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암세포 활성 유전자인 ‘PI3K’를 올가미로 묶자 세포 분열이 멈췄다. 빛을 끄면 다시 분열이 시작되기 때문에 당장 치료에 활용할 수는 없지만, 내부 단백질을 관찰하고 암세포 원리를 규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암세포뿐만 아니라 일반 생체세포와 형태가 다른 신경세포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세포 내 존재하는 3만종 이상의 단백질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허 박사는 “(올가미 기술을 활용해) 신경세포 연구 결과를 많이 얻었다”며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논문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궁극적으로는 기존 기술로 밝히기 어려웠던 암 치료법이나 뇌의 복잡한 신경망 구조·기능을 규명하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 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이자 생화학 연구방법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소드’ 6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