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가상화, R&D는 끝났다]<중>통신 한국, 왜 연구실을 못 벗어나나

지난 5월 16일 세계정보통신사회의 날(WTISD)에 우리나라가 유·무선 브로드밴드 국가전략 우수 모범사례로 선정돼 박근혜 대통령이 공로상을 수상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 때부터 세계 최초 광대역 롱텀에벌루션 어드밴스트(LTE-A)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통신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파괴적 기술’로 불리며 전통적 네트워크 체계를 뒤흔들 것으로 평가받는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SDN)’ ‘네트워크기능가상화(NFV)’ 등 네트워크 가상화 분야에서는 세계 수준과 거리가 멀다.

몇몇 업체가 상용화 직전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활발한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는 해외에 비해 2년 이상 뒤처져 있다.

가장 발달한 통신 기술을 가진 이동통신사도 2017년 이후에야 상용화 서비스를 내놓을 전망이다.

SDN이나 NFV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내 업체는 5~6곳에 불과하다. 대부분 정부가 추진하는 소규모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마저도 상용화 계획이 있는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네트워크 가상화 시장에서 뒤처진 근본적인 원인으로 ‘강력한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꼽았다. 정부의 경우 부처별 책임과 권한이 달라 주도적으로 사업을 끌고 나갈 주체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최고정보책임자(CIO)나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사업 추진을 위한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아 무작정 최고경영자(CEO) 결정만 기다리는 기업 구조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류기훈 나임네트웍스 대표는 “무선통신과 달리 네트워크 분야는 본래부터 글로벌 기업과 기술 격차가 있었는 데 가상화 분야에서도 이미 시장 선점을 놓쳤다”며 “세계 시장과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네트워크 가상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가상화를 도입한다고 해서 기존 망 전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닌데도 무턱대고 거부감부터 갖는다는 얘기다. R&D 단계에서 더 이상 진보를 하지 못하는 이유다.

박성용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쿨클라우드 대표)는 “통신 3사와 대기업이 나섰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며 “온도가 서서히 오르는 수조 속 개구리 처럼 많은 기업이 사태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어 기술 발전이 더딘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