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난망 구축 '국제표준'이 암초

정부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 구축을 2017년까지 끝내기로 했으나 필수 기능이 포함된 단말기 제작은 이 기간 내 힘들 것으로 전망됐다. 가장 유력한 방식인 롱텀에벌루션(LTE) 단말기의 국제 표준 제정이 일러도 올 연말께 가능해 국제 표준을 따르려면 2017년까지 단말기 확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당장 내년 시범사업을 위해서도 복합단말기 등 대안 마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리노스, 모토로라·에릭슨LG, LG유플러스, KT, SK텔레콤, 삼성전자, 알카텔루슨트 7개 기업(컨소시엄)과 미래창조과학부, 안전행정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관계 기관, 대학 전문가가 참여한 ‘재난망 전문가 간담회’가 지난 23일 비공개로 열렸다. 제안서의 주요 이슈에 대해 각 업체와 기관 전문가가 문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논의의 쟁점은 재난망 필수 기능 구현을 위한 표준화와 제품 상용화 시기, 주요 기능별 구현 방안, 자가망과 상용망 동시 이용 시 망분리 문제 등이었다. 이 과정에서 표준은 큰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하던 일부 업체마저 2017년 이후에야 주요 기능 구현이 가능하다고 인정하면서 표준이 ‘현실적인 걸림돌’로 떠올랐다.

이동통신 표준화 기술협력기구인 3GPP에 따르면 LTE로 재난망을 구축하게 되면 직접통화(D2D)와 그룹통화 기능을 위한 표준(릴리스12) 개발은 올 연말 완료된다. 문제는 또 다른 필수 기능인 단말기 중계, 부가기능 최우선 요구사항인 단독기지국 운용 표준(릴리스13)이 2016년 상반기에 제정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모든 업체는 필수기능 구현과 단말기 생산 시기를 릴리스13이 제정된 지 12~24개월 이후라고 밝혔다. 테스트와 안정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2017년 이후에야 제대로 된 재난망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칩세트 제조사인 퀄컴의 협조가 지연되면 시기는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20만대 안팎에 불과한 국내 재난망 단말기 시장을 겨냥해 퀄컴이 칩세트를 제때 출시할지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업계 의견은 “반드시 표준을 따라야 한다” “별도의 국내 표준을 마련하자” “복합단말기 등 과도기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자” 등으로 갈렸다. 알카텔루슨트와 모토로라·에릭슨LG, 리노스는 국제표준 준수를 주장했다. 반면에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은 국내표준 개발을, 삼성전자는 ‘LTE+극초단파(UHF) 복합단말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12개월 이내에 복합단말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표준제정 완료 때까지 과도기 기간에는 기존 무선망으로 필수 기능을 구현하자는 뜻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국제표준이 아닐 뿐만 아니라 칩 조달, 이중 주파수 확보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국내표준을 개발하면 와이브로 사례에서 보듯이 ‘갈라파고스’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표준이 제정되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내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재난망 구축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내년 강원도 시범사업을 위한 약 1000억원 규모의 예산신청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는 “단말기가 나오는 시점이 일러도 2017년 이후인데 단말기도 없이 어떤 근거로 시범사업 예산을 신청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LTE로 가는 것은 찬성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졸속행정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난망 전문가 간담회 주요 내용 / 자료:업계종합>


재난망 전문가 간담회 주요 내용 / 자료:업계종합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