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93>정통부 혁신드라마

정보통신부 혁신 드라마의 지향점은 ‘뉴(New) 정통부’ 만들기였다. 혁신 드라마를 기획하고 실행한 주역은 진대제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이다. 그는 장관 재임시절 내내 파격의 혁신 드라마를 선보였다. 파워포인트 업무보고에 이어 이전 공직사회에서 듣도 보도 못한 CEO 미션제, MBO(Management By Object), 정책관리시스템(GPLCS) 도입, 부처 예산 자율삼각 등이다. 모두 최초라는 기록을 남겼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2003년 5월 30일 ‘2003년도 정보통신부 워크숍’에서 모자를 쓰고 직원들 사이에서 강연하고 있다. <정보통신부 자료>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2003년 5월 30일 ‘2003년도 정보통신부 워크숍’에서 모자를 쓰고 직원들 사이에서 강연하고 있다. <정보통신부 자료>

2003년 3월 3일 취임 후 첫 부내 순시에 나선 진 장관이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화장실이었다. 뒤따르던 비서관은 경악했다. 그는 실·국 순시에서도 기존 장관들과는 언행이 달랐다.

직원들의 업무노트를 들춰보고 책상서랍과 캐비닛도 열어 보관 중인 서류를 꺼내 봤다.

진 장관은 그해 3월 28일 대통령 업무보고가 끝나자 곧장 뉴 정통부 만들기에 착수했다. 정책을 보는 진 장관의 계산법은 관료들과 달랐다.

진 장관은 목표가 분명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앞으로 10년, 15년 후에 국민이 먹고살거리를 만들어달라는 미션을 받았습니다. 이를 위해 정통부에 성과지향의 민간경영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해 5월 30일 1박 2일 일정으로 열린 정통부 워크숍.

충남 천안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에서 진대제 장관을 비롯해 670명의 정통부 및 산하기관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진 장관은 워크숍 첫날 “정통부의 업무 혁신 및 조직문화의 변혁이 필요하다”며 △부서 간 장벽 철폐 △단순·중복기능 정리 △중단·폐지 부문 정리 △현실성 있는 정책 개발 △확대할 분야 적극 발굴 △정책 결과에 대한 평가 및 환류 △IT 전문성 제고 △업무 프로세스 정립의 8개 혁신방안을 제시했다.

이날 워크숍은 파격적이었다. 진 장관은 과거 삼성전자 사장 시절과 마찬가지로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강단에 올라 강연했다. 강연 도중 간부와 직원을 불러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오후에는 실·국별 업무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레이저 광선과 스포트라이트가 교차하고 장중한 음향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IT로 실현하는 국민참여사회’ ‘정보통신 1등국가 건설’이라는 정통부의 비전이 선포되면서 이날 행사는 막을 내렸다.

석호익 당시 정보화기획실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역임,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 통일IT포럼 회장)의 증언.

“평소 부처 워크숍을 하면 장관이 훈시성 발언을 하고 실·국별로 판에 박힌 내용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진 장관은 마치 대학축제를 하는 형식으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김동수 당시 정보통신진흥국장(정통부 차관 역임)의 기억.

“통신서비스정책에 관해 발표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넘어갔습니다.”

진 장관은 6월부터 기존 관행을 깨는 파격조치를 취했다.

진 장관은 워크숍에서 약속한 대로 실·국 간 칸막이를 모두 철거했다. 정부부처 중 정통부만 칸막이가 없었다. 이어 6월 25일부터 매주 수요일을 ‘정보통신 가정의 날’로 지정했다.

이날은 전 직원이 오후 6시 정각에 이른바 ‘칼퇴근’을 하도록 했다. 진 장관은 첫날 퇴근시간 1분 전 집무실을 나와 20여분 간 실·국을 돌며 직원들이 정시에 퇴근하는지 직접 살펴봤다.

진 장관의 증언.

“정통부에 와서 보니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평일은 말할 것도 없고 주말에도 늦게까지 일을 하더군요. 특히 국회가 열리면 밤샘을 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도록 했습니다.”

진 장관은 직원과 마음의 문을 여는 호프 앤드 호프데이(Hope&Hof Day)를 마련했다.

진 장관은 6월 27일 저녁 정보통신정책국 직원들과 정통부 인근 생맥주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단순한 호프데이가 아니라 희망(Hope)을 이야기하는 자리라는 의미의 호프 앤드 호프데이로 정했다. 이 모임은 매월 실·국별로 돌아가면서 열렸고 산하기관까지 확대했다. 기자들도 자리를 같이했다.

진 장관은 정통부 업무 혁신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CEO 미션제와 MBO제, 정책관리시스템 등을 도입했다. 관료들에게는 낯선 제도였다.

진 장관의 이어진 회고.

“이 제도는 삼성전자 사장 시절 적용했던 시스템입니다. MBO제는 정통부 실·국별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종합적인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CEO 미션제는 장관이 실·국장에게 주요 정책에 미션(과제)을 주고 전략회의를 열어 추진 실적을 점검했습니다. 나중에 전 직원으로 확대해 개인별 성과목표를 선정했습니다.”

그가 간부들에게 내린 CEO 미션 사례 두 가지.

진 장관은 석호익 정보화기획실장에게 당시 1일 29통에 달하던 스팸메일을 절반으로 줄이라는 CEO 미션을 줬다.

진 장관의 말.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소 황당한 임무였어요. 그런데도 석 실장은 KT에도 가보고 통신사업자들과 만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등 동분서주해 스팸메일을 13건으로 줄였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진 장관은 노준형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장관 역임, 현 김앤장 고문)에게 2005년 정통부 예산항목을 10% 줄이라는 CEO 미션을 부여했다. 노 실장은 장관의 지시에 한 술 더 떠 항목을 15% 줄였다. 예산은 전년 대비 6%가 줄었다. 정부수립 후 부처가 자체에서 예산을 줄인 일은 정통부가 처음이었다.

그해 6월 19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을 위한 노무현 대통령 주재의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 각 부처 장관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회의를 주재하던 노 대통령이 잠시 휴식을 제안했다.

“한 10분 쉽시다. 차 한 잔씩 마시고 다시 회의를 합시다.”

회의가 재개되자 노 대통령이 말문을 열었다.

“예산 편성과정에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정통부는 어땠어요.”

대통령이 정통부 예산편성 내용을 알고 묻는 말이었다.

“정통부는 자발적으로 예산을 줄였습니다. 항목을 15% 정도 줄였더니 전체 예산은 6%가량 삭감됐습니다. 선택과 집중으로 일에는 지장이 없도록 했습니다.”

김병일 기획예산처 장관(현 한국학진흥원장)이 반색을 하며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다.

“정통부는 장관이 기획예산처 장관 역할을 하고 기획관리실장이 정통부 장관 역할을 해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비슷한 항목 수를 줄였더니 예산을 6% 줄일 수 있었습니다.”

김병일 장관이 말했다.

“정통부 장관이 앞으로 기획예산처 장관을 하세요.” 토론회장에 웃음이 터졌다.

노준형 당시 기획관리실장의 기억.

“전적으로 진 장관의 의지였습니다. 자체 예산심의회의에서 제가 예산을 줄이면 진 장관이 전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정부 수립 이래 예산요구액을 전년보다 적게 편성한 부처는 정통부가 처음이었습니다.”

노 실장의 계속된 증언.

“이날 대통령 주재 토론회 도중 진 장관이 나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몇 개 사업에 예산을 정확히 얼마 줄였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자료를 확인해 답변을 문자로 보냈는데 그 당시 장관과 기획관리실장이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점은 상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얼리어답터인 진 장관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정통부 업무 혁신의 결정판은 단연 정책관리 시스템인 GPLCS(Government Policy Life Cycle System) 도입이었다. 경험과 사람 중심의 업무 형태를 정보와 시스템 위주로 변경한 것이다.

정통부는 이 제도 도입을 위해 2003년 4월 준비에 착수했다. 실·국별, 정책별로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시스템 개발을 삼성SDS에 맡겼다. 개발비만 10억여원이 들어갔다. 이렇게 개발한 시스템은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정통부에 구축됐다.

이 업무를 담당했던 서병조 기획예산담당관(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운영지원단장 역임)의 말.

“몇 달 고생을 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참여해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행정에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접목해 시스템 중심의 정책 구현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정통부 시절까지는 이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이 시스템의 기능은 크게 업무 관리와 정책품질 관리, 지시·보고 관리, 업무상황 관리 등으로 구분했다. 업무 관리는 부내 역점 정책과 일반정책, 일반업무 등 1000여개의 업무를 실·국, 과·팀 단위까지로 세분화했다. 일간·주간·월간 업무 일정을 등록해 추진실적을 하루 단위로 확인하게 만들었다.

정책품질 관리는 정통부 정책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쟁점과 이견, 대응전략 등을 입력했다. 지시·보고 관리는 대통령 지시사항이나 장관 지시·지적 사항의 이행 여부를 기록했다. 회의시간도 단축하고 업무효율도 높였다. 모든 정통부 업무를 기능별, 목적별, 조직별로 관리할 수 있었다.

진 장관은 종이 한 장에 실·국장별 업무를 정리해 갖고 다녔다. 앞면에는 MBO, 뒷면에는 CEO 미션을 기록한 종이를 비닐코팅해 수시로 꺼내보며 주요 업무를 챙겼다.

2004년 여름 어느 날.

노무현 대통령이 진대제 장관을 불렀다. 청와대에 들어가 세 시간여 대화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비닐코팅한 종이를 꺼내 놓고 내용을 설명했다.

진 장관의 회고.

“대통령께서 ‘이거 나도 하자고 한 건데 드디어 했네. 다른 사람들은 왜 이런 걸 안하는 거야. 그거 샘플로 여러 개 주세요’라고 하셔서 샘플을 만들어 대통령께 드렸습니다. 대통령께서 국무회의 때 다른 부처에 비닐코팅을 나눠주면서 ‘2005년부터 모든 부처가 정통부처럼 업무추진 방식을 바꾸라’는 지시를 하셨습니다.”

정통부는 2004년도 정부업무평가에서 1위를 차지해 대통령 기관표창을 받았고 이후 각종 평가대회를 석권했다. 다른 부처는 정통부 따라잡기에 죽을 맛이었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