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 유권해석, 금융당국 뒷북 대응에 금융사 ‘낭패’

개정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전, 주요 금융사들이 주민번호수집 금지와 관련해 허용금융업무 범위를 규정해달라며 수차례 요구했으나 당국이 안일하게 대처, 묵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금융업무 범위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아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사가 개별적으로 자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해 가능한 업무 범위를 찾아나서면서 ‘앞뒤가 바뀐 대책’이라는 평가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주민번호 수집 예외규정을 뒀지만, 금융업무 중 주민번호 수집 허용 범위의 세부 세칙이 마련되지 않아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각 협회 등을 통해 예외규정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미리 마련해야했지만 법이 시행된 후 뒤늦게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금융당국의 행태에 ‘사후약방문’ 대처라는 비판이 나왔다.

7일자로 발효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 근거해 금융사들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보호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등 관계 법령에 근거가 있는 업무 외에는 주민등록번호 수집과 활용을 할 수 없다.

현재로는 법 근거가 없어도 편의나 관행에 따라 주민번호 수집이 필요한 업무만 수십여 가지에 달한다. 금융 상담 업무와 공과금 수납 이용조회, 계좌잔액 조회 등이 대표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주민번호 수집을 금지한다고 했으면 당연히 사전에 가능 업무와 불가 업무를 구분하는 작업이 있었어야 한다”며 “은행, 카드, 증권 등 모든 업권에서 주민번호 수집 업무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 갑론을박만 이뤄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뒤늦게 금융당국은 주민번호 수집이 가능한 업무에 대해 세부세칙을 내려주겠다는 입장을 각 금융사에게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대체수단을 마련하지 못한 업무 중 부가서비스 회원모집 등 회원에게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작은 업무에 대해서는 상당수 카드사가 대체수단을 마련할 때 까지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며 “정확한 지침만 마련됐다면 이 같은 혼선은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아직 금융거래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일부 업무는 주민번호 활용이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금융회사들은 은행연합회, 여신금융협회, 생명·손해보험협회 등 각 협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다음 달 금융당국에 유권해석을 의뢰할 계획이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