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희망의 불씨를 살리자]<상>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

한때 국내 2위 휴대폰 제조사로 승승장구했던 팬택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무조건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팬택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한다. 워크아웃 때보다 기업청산 가능성도 커졌다.

팬택이 쓰러지면 대량 실직사태가 벌어진다. 국내 휴대폰 시장 독점 심화, 해외 기업 인수 시 기술유출 등의 우려도 나온다. 팬택이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와 경영정상화를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진단한다.

“앉아서 빚쟁이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팬택이 법정관리를 하든 청산절차를 밟든 협력사가 받을 돈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언론에 더 이상 해줄 얘기도 없어요.”

팬택이 법정관리 신청서를 제출한 지난 12일 한 협력사 관계자가 한 얘기다. 몇 달째 부품 대금을 받지 못하면서 대다수 팬택 협력사가 도산 위기에 처했다. 그의 말대로 법정관리가 시작되거나 청산절차에 들어가도 협력사가 받을 수 있는 대금은 거의 없다. 하지만 법원이 법정관리를 거부해 팬택이 청산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타 업체에 공동으로 부품을 납품했던 업체라면 모르지만 팬택에만 의존했던 협력사는 아예 희망의 끈이 사라진다. 1800여명 팬택 직원을 포함해 최다 8만명의 실직자가 발생한다. 3인 가족으로 따져도 20만명이 넘는 가족의 생계가 위태로워진다. 일부 업체엔 이미 금융권 가압류가 시작됐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권고사직을 하는 곳도 생겨났다.

휴대폰 생태계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팬택은 약 10%를 차지한다. 팬택 제품 사용자는 삼성전자(점유율 약 65%)나 LG전자(약 18%)로 이동하게 된다. 두 곳은 반사이익을 얻지만 소비자 선택의 폭은 그만큼 좁아진다. 독점이 심해지면 부품업체들도 가격 협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김지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대한 종속도가 커지면서 부품업체의 가격 협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휴대폰 시장은 과점 체계가 고착화되면서 경쟁 강도가 완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쟁 완화는 소비자에게 피해로 돌아온다. 이통사 단말 전략도 제한된다.

기술 유출과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 쌍용차 사례와 같은 기술 유출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오히려 건전한 투자가 이어져 시너지가 발생한다면 팬택에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가 아닌 해외 기업이 팬택을 인수하면 국내 휴대폰 산업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진다.

팬택은 약 5000개 등록특허, 1만4000여개 출원특허를 보유했다. 지문인식 LTE 스마트폰, 메탈 안테나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급성장하는 중국이나 인도 기업이 인수에 나설 경우 국내 기업과 격차는 한층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벤처 신화’로 불리던 팬택이 사라지면 젊은 창업자들의 꿈도 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벤처에서 시작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창업자 사이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이미지도 생겨나기가 어렵다.

팬택 관계자는 “샤오미나 애플처럼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대한민국 기업 생태계에 꿈과 희망이 자리 잡을 수 있다”며 “이미 과거에 10여개 중소 휴대폰 제조사가 폐업했고 팬택마저도 사라진다면 열정을 가진 젊은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패스트트랙 방식을 적용해 팬택 회생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방침이다. 이르면 이달 내로 법정관리 개시 여부가 결정된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