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28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28회

4. 아틸라를 흔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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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아케르, 너의 말대로 로마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살아있으라.”

오도아케르의 눈에는 야만인의 불길이 들어있었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불길이었다.

“제가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오도아케르의 아버지, 에데코가 말했다.

“호노리아 공주는 지금 아틸라 제왕님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을게 뻔합니다. 그렇다면 테오도시우스가 함정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에데코는 오도아케르를 뒤로 밀었다. 아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테오도시우스는 그럴 위인이 못된다. 그는 내 눈치만 보고있다. 아마도 내가 직접 간다면 나를 환영할 것이다. 내가 서로마제국과 실랑이를 하느라 동로마제국을 소홀히 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아틸라는 이미 충분히 승리한 자였다.

“어차피 호노리아 공주의 편지와 황금반지는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입니다.”

오에스테코는 한껏 고양되어 있었다. 로마는 곧 세상 전부를 의미했다.

“그렇다. 약속을 지키든 안지키든 이미 서로마제국의 절반은 우리 것이다. 약속을 지킨다면 피를 보지 않을테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반드시 피의 대가를 치룰 것이다.”

역사의 운명은 이제 막무가내로 아틸라의 편이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훈족의 아틸라가 국경 근처에 나타났다는 소식만 듣고도 벌써 겁에 질려 있었다. 그는 당장 호노리아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재빨리 말했다.

“나는 네가 아틸라와 결혼하는 것은 매우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는 곧바로 나의 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서로마제국으로 돌아가라.”

호노리아는 어리둥절했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결국 아틸라가 나를 살리는구나.”

호노리아는 뒤도 안돌아보고 동로마제국의 궁을 나섰다. 그녀는 앞으로 전 유럽이 치루어야 할 피의 대가와 맞바꾼 이기적인 자신만의 자유를 얻었다. 서로마제국으로 빨리 돌아가서 아틸라와 결혼할 꿈에 부풀었다. 아틸라가 누군가? 야만족의 왕이라고 하지만 로마가 벌벌 떨고 있는 상대였다. 호노리아는 손해 볼 게 조금도 없었다.

“손해 볼게 없다. 해보자.”

미사흔과 에첼, 오형제는 각각 풀불을 들고 있었다. 천 개의 동굴이지만 해야만 했다. 그들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각 동굴마다 풀불을 던졌다. 풀불은 은 꽉 막힌 동굴에 메케한 연기를 가득 채웠다. 사막의 매운 모래바람을 피해 잠들었던 작은 동물들도 기어나왔다. 소름돋는 기이한 곤충들도 기어나왔다. 아직 사람의 그림자는 나오지 않았다. 귀신의 그림자도 나오지 않았다. 미사흔은 동굴의 입구마다 풀불을 놓으며 되뇌었다.

“너희들은 주인이 아니다. 주인이 아니다.”

일곱 명이 몇 개의 동굴에, 몇 십개의 동굴에, 몇 백개의 동굴에 풀불을 놓았는지 모른다. 그들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사막의 밤은 오래도록 추웠다. 오래도록 독했다. 문득 화살이 우두둑 짧게 쏟아졌다. 화살도 지쳤는가? 순간 십여 명의 검은 괴물들이 우왕좌왕하며 뛰쳐나왔다. 복호였다. 드디어 어렵게 빛과 어둠으로 대면했다.

“아직도 살아있다니. 미사흔, 너는 이미 신라에게 버려진 왕자다.”

복호는 풀불의 연기로 인해 목이 말랑하게 녹아있었다.

“신라에게 버려져도 상관없다. 내가 신라를 다시 세울 것이다.”

“하하하. 미친소리. 황금검에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구나. 더러운 계집은 아직 도 달고있구나.”

어느새 에첼은 단도를 빼어들고 복호의 어깨를 아틸라처럼 찍어누르고 있었다. 복호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푹 주저앉았다. 복호를 지키고 있는 군사들이 에첼을 향해 아수라가 되어 달려들었다. 미사흔이 몸을 부리나케 날렸다. 그러나 그들의 십 여개의 칼이 미사흔을 막다른 골목으로 막아섰다.

“에첼.”

미사흔의 음성은 또다시 닥쳐온 비극으로 인해 달떴다. 오형제는 말에 탄 채로 그들을 향해 무작정 돌진했다. 갑작스런 거친 말의 공격을 받은 그들은 말과 퉁퉁 부딪히며 어디론가 나가떨어져 죽었다. 복호는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에첼은 복호의 손에 박힌 단도를 옆으로 틀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퍽퍽했다. 복호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

비명이 사막의 모래폭풍을 바삐 불러들였다. 바람이 거세어졌다.

“황금검은 어디 있느냐?”

복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첼은 복호의 손에 박혔던 단도를 무지막지하게 비틀어 빼버렸다. 그리고 그 단도를 다시 그의 손을 가혹하게 박았다.

“어디 있느냐?”

복호는 입으로 피를 쏟았다. 피가 토막토막으로 터져나왔다.

“동굴 안에 있다.”

미사흔과 에첼, 오형제는 동굴을 일시에 쳐다보았다. 천 개의 동굴이 그들 앞에 잔인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은 수 백의 동굴에 풀불을 놓았다. 그 중에 어느 동굴인지 막막했다. 사막의 모래폭풍이 바로 앞자락까지 와있었다. 아, 잿빛이었다.

“보이지 않아.”

아틸라가 중얼거렸다. 에르낙이 아틸라의 눈치를 살폈다.

“황금검이 이제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갇혀있음이 분명하다.”

아틸라는 황금검의 전설이 아직 당도하지 않은게 불안했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는 잿빛이 되어있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