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10년 전 디젤차 개방정책,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수입차 내수 점유율서 디젤 비중 급증

[이슈분석]10년 전 디젤차 개방정책,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디젤차 전성시대다. 고연비와 정숙성으로 무장한 디젤차가 자동차 시장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 수입차 10대 중 7대는 디젤차다. 국산차 제조사도 잇따라 디젤 세단을 출시하며 내수시장 방어에 나섰다. 디젤차가 아니고선 국내 자동차 시장을 논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2005년 실시한 디젤차 시장 개방이 자리한다. SUV와 세단의 차별을 허물고 디젤차 판매를 전면 허용한 지 만 10년째를 맞아 이 정책의 성패를 점검해봤다.

[이슈분석]10년 전 디젤차 개방정책,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디젤차를 퇴출하라” 대기오염 주범으로 몰린 디젤차

국내 디젤차 시장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국내에선 ‘디젤차=대기오염 주범’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1998년 환경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대기오염물질의 41%를 자동차가 배출하고, 이 가운데 63.8%를 디젤차가 내뿜는 것으로 돼있다.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으로 온실가스 감축이 지구촌 과제로 떠오르고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대기오염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디젤차 퇴출 운동이 벌어졌다.

환경부는 2000년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일부러 터무니없이 높은 배출허용기준치를 제정, 디젤차 판매를 막는 정책을 폈다. 디젤차 질소산화물(NOx)과 미세먼지(PM) 기준치가 유럽에 비해 각각 25배, 5배나 강했다. 특히 세단과 다목적차(SUV)를 동일하게 승용차로 분류하는 자동차관리법과 달리, 크기(8인승 이하)와 기능(프레임 및 4륜구동 유무)에 따라 승용1과 승용2를 가르는 독자적 분류 체계를 만들어 승용1에만 이처럼 강한 규제를 적용했다.

당장 자동차 제조사에 불똥이 튀었다. IMF 이후 저렴한 경유 가격에 힘 입어 큰 인기를 끌며 한때 내수시장 점유율이 40%를 넘던 디젤 SUV 시장은 된서리를 맞게 된다. 한 예로 기아차 카렌스2 디젤 모델은 승용1로 분류되면서 2003년 초 석달 동안 판매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 차는 월 3000대 가까이 팔리던 인기 모델이었다. 현대차 싼타페와 트라제XG 등 인기 SUV 모델이 줄줄이 판매 중단 파동을 겪었다.

◇국산차 유럽진출 지원을 위해…디젤차 판매 전면 허용

이 같은 정책은 내수 판매를 위축시킨 것 외에도 여러 모로 국내외 정세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우선 국내 자동차 업계 이익 관점에서도 맞지 않았다. 당시 몸집을 키우는 데 골몰했던 현대·기아차는 디젤차의 본고장인 유럽에 가고싶어 했다. 현대차는 2001년 라비타(현지명 매트릭스) 디젤 모델을 처음으로 유럽에 수출한 이후 클릭(겟츠), 베르나(액센트), 아반떼(엘란트라) 등을 연이어 유럽에 내보내는데 성공했다. 자연히 유럽 자동차 업계로부터 “한국 디젤차 시장도 개방하라”는 압력이 들어왔다. 유럽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국내 디젤차 판매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디젤차 기술을 둘러싼 상황도 변했다. 이미 1990년대 말 선진 자동차 제조사들은 디젤차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진동과 소음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엔진 기술을 선보였다. 연료 직접분사 시스템(커먼레일)이라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보쉬·덴소 등이 상용화에 앞장선 이 기술은 기계식 펌프를 대체하면서 소음과 진동을 낮추면서도 유해 배기가스 배출은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현대·기아차 역시 2000년 3월 커먼레일 직분사(HSDI) 디젤엔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엔진은 당시 유럽에서 사용되던 디젤차 기준인 유로3를 만족시켰다. 결국 이 같은 기술 발전 사실을 수용한 정부는 매연여과장치(DPF) 등 유해 배기가스 대응 장치를 단다는 조건으로 2005년부터 세단을 포함한 디젤차 판매를 전면 허용하게 된다.

디젤 세단 판매가 허용되자 국내 업체들도 경쟁적으로 디젤 신차를 출시하게 된다. 2005년 5월 기아차 프라이드를 시작으로 현대차 아반떼XD, 한국지엠 토스카 등 국산 디젤 세단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SUV를 제외하고도 10종이 넘는 국산 디젤차가 판매되고 있다.

◇유럽 진출 늘었으나 내수에서 두손…‘절반의 성공’

현대·기아차는 이 같은 정책에 힘입어 유럽 시장에서 나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유럽 자동차제조사협회(ACEA) 통계에 두 회사가 동시에 잡히기 시작한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현대·기아차 유럽 자동차(상용차 제외) 판매량은 28만7000대에서 67만9000대로 배 이상 증가했다. 점유율은 세 배 늘었다. 통계적 어려움 때문에 디젤차 판매량이 얼마나 되는 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디젤차 비중이 50%를 넘는 지역임을 감안하면 디젤 기술력이 유럽에서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수 시장을 지나치게 많이 내준 것은 뼈아프다. 수입차가 지난해 내수 점유율 12%를 기록하는 사이 현대·기아차 점유율은 68%까지 떨어졌다. 이는 2012년 71.6%보다 3.6%포인트나 하락한 것이다.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디젤 세단 시장 개방을 기점으로 급격히 늘어난다. 디젤차 비중은 2003년 2.2%에 불과했으나 2006년 10.7%로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특히 2009년 20%를 돌파한 이후 파죽지세로 내수시장을 공략, 지난해에는 60%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올해는 70%를 위협할 정도다. 가솔린은 2003년 97.8%에서 지난해 34%로 비중이 크게 줄었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대·기아차와 한국지엠, 르노삼성 등이 속속 디젤 세단을 내놓고 있지만 수입산 디젤의 기세를 꺾지는 못하고 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11만대 넘게 팔린 수입차 중 디젤차 비율이 68%가 넘었다. 작년보다 42%가 증가한 수치다. 누적 판매 베스트 10 가운데 9대가 디젤일 정도다. 국산차가 내수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디젤엔진 기술 개발에 더욱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디젤차 분야에서 수입차와 국산차는 연비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국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디젤엔진 개발에 투자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