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출연연이 새 장관에 거는 기대

[데스크라인]출연연이 새 장관에 거는 기대

취임 한 달을 넘긴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진짜 ‘메스’를 들이댈까. 새 장관을 바라보는 과학기술계 시선 깊숙한 곳에 불안감이 자리한 이유다.

아무리 성과를 내놓으라고 해도 당장 줄 것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최 장관은 취임 첫 방문지로 판교 테크노밸리와 대전 KAIST의 KI빌딩 오픈랩,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빡빡한 일정으로 찾았다. 취임 사흘 만인 지난달 19일 토요일이었다.

최 장관이 주문한 건 하나였다. 창조경제를 위해 패러다임을 바꿔 달라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에 다름 아니다. 물론 최 장관은 사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연구원과 학생들의 등을 토닥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뒤 강성모 KAIST 총장을 비롯한 학생 30여명과 인근 치맥가게에서 내일을 기약하는 파이팅을 외쳤다. 소통에 스스럼이 없었다는 평가였다.

그로부터 5주 뒤인 23일 토요일, 최 장관은 50여개 산하·유관기관장과 본부장, 부처 실·국장 등 250여 명을 한곳에 모아 놓고 경기도 수원서 비리근절 워크숍을 주재한다. 최 장관이 비리 건을 접하고 대로했다는 후문이다.

과학기술계도 장관 의지와 현실 간 괴리에 대한 충격파가 컸다는 것을 안다. ICT 쪽에서 벌어진 일인데 왜 우리가 덤터기 써야 하느냐는 편 가르기 식 인식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불편한 심경과 함께 속내도 토로했다.

연구원들이 요구하는 건 크게 자율성 보장과 정책의 일관성 유지, 감사 완화 세 가지다.

풀어보면, 믿고 맡겨 달라는 것이 가장 크다. 두 번째는 예산권을 쥔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연구회도 새로 통합됐으니 예산배분권을 줘 출연연과 연구원들이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감시 및 견제, 평가 시스템이 강화돼 1년 중 보고서 쓰다 2~3개월을 보낸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실제 과학기술계는 다른 조직에 비해 투명한 편이다. 개인 모럴 해저드보다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제도와 시스템 때문에 나오는 사건이 많다. 인턴이나 연구원 인건비 해결 방법이 없으니, 변칙적으로 예산을 활용하는 것 등이 그 예다.

물론 출연연도 한층 더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출연연이 필요로 하는 미션은 과거 1980~1990년대 기업이 하지 못하는 R&D를 주로 수행했고, 2000년대 들어선 기업지원과 공공성이 강조된 R&D를 추구해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출연연의 핵심업무인 연구와 그 성과다. 출연연 박사급 연구원 6000여명이 대덕특구 출범 이후 대략 12만개의 과제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른바 ‘대박’은 아직 없었다. 욕심을 더 낼 수도 있지만 매년 세상을 변화시킬 대표기술 한 건만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과 미래부 측은 출연연 정년환원과 기타공공기관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출연연도 뭔가는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지금의 분위기로 보면 최 장관이 출연연에 메스를 대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전에 연구회 및 연구원 자율성, 정책의 일관성을 보장하고 책임형으로 평가하는 방안을 먼저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