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위기의 정유사, 탈출구는 석유 개발 부문으로 다각화

[이슈분석]위기의 정유사, 탈출구는 석유 개발 부문으로 다각화

국내 석유산업이 위기다. 경제 성장을 견인하던 석유제품 수출이 고꾸라졌으며 몇 년째 바닥을 기고 있는 정제 마진 여파로 정유 사업은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값 싼 미국의 셰일오일·가스 공급 확대,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중동 지역 석유 정제 설비 확충 요인으로 국제시장에서 국내 정유사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내수 시장마저 경기불황 여파로 위축된 데다, 그나마도 정부의 알뜰주유소를 내세운 경쟁촉진 정책 여파로 적정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외 모두 사면초가 상황을 맞은 석유산업의 실태를 짚어보고 위기 극복 방안을 찾아본다.

◇셰일 오일 증대, 석유제품 수요·수출 감소…탈출구가 안보인다

지난 2분기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국내 모든 정유사는 일제히 적자를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사업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고 2분기 영업 손실 503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GS칼텍스도 매출액 10조1967억원, 71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정유 부문 영업 손실이 지난 분기보다 3배를 넘어선 데다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도 78% 이상 감소했다. 에쓰오일 역시 2분기 매출 7조4188억원, 영업 손실 549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문제는 정유사의 석유사업 적자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닌, 각 정유사별로 길게는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 정유사 정유부문 실적은 글로벌 메이저는 물론 한국 제조업 평균 매출액과 영업이익률에 훨씬 못 미치는 저조한 수준이다. 이런 실적 악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석유 산업 구조변화가 반영돼 나타나는 것이다. 먼저 석유는 셰일가스·오일 등 생산 확대에 따라 공급대체 현상이 나타나고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도 생산이 증가해 가격이 저렴해진 천연가스로 대체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 석유제품 수요가 둔화되는 가운데 정제 산업은 공급 초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따르면 세계 정제 산업 공급능력은 2011~2016년에 일산 960만 배럴 늘어나 2016년에 1억27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에서만 증가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30만 배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정제산업 설비과잉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대부분 정유사 설비가동률이 하락하고 정제 마진도 악화추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정제 설비 가동률은 2006~2010년 평균 82%에서 2016년에는 78%로 낮아질 전망이다. 일산 300만 배럴 정제능력으로 세계 6위를 차지한 국내 정유산업이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서도 그동안 90%대의 가동률을 유지해 온 것은 수출에 힘을 기울인 결과다.

그러나 석유제품 생산과 수출은 지난 2012년 10억3470만8000배럴, 4억4089만7000배럴로 정점을 찍은 후 2013년 각각 10억198만배럴, 4억2929만1000배럴로 내려앉았다. 올 상반기에도 석유제품 생산과 수출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68만7000배럴, 261만9000배럴 줄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수출 전선에 다양한 복병이 존재해 시황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 동남아, 중동 등 지역을 중심으로 신흥국의 정제능력이 계속 확대됨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지고,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규제 강화로 세계적인 탈석유화가 진전되면서 석유제품 수요 증가세가 더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셰일혁명 영향으로 미국 석유제품 수입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등 비전통 에너지 생산 확대가 국내 정유사 석유제품 수출에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사업다각화 확대 등 자구책, 정부 지원 정책 절실

석유업계와 전문가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유산업 환경 변화에 따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정유사는 사업다각화와 에너지효율향상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정부는 정유 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지원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석유업계는 정유사가 석유정제라는 주력 사업영역에 머물지 않고 관련·비관련 사업 영역으로 다각화에 더욱 속도를 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유, 석유제품 유통을 근간으로 석유화학 제품 생산, 해외 자원 개발, 자동차 관련 애프터서비스 등 정유 산업 전 가치사슬에서 이미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또 2차전지, 소재 등 차세대 에너지 기술과 관련된 영역과 도시가스, 집단에너지, 발전 등 정유 이외 에너지산업 분야에 이미 진출해 기반을 다지고 있다. 2010년 기준 SK에너지는 사업다각화지수가 0.47로서 가장 높았고, 이어서 에쓰오일이 0.21, GS칼텍스가 0.18, 현대오일뱅크가 0.15 순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볼 때 외국 메이저나 전문 석유회사에 비해 미흡한 상황이다. 정유 업계는 정유,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다각화를 추진하되, 메이저가 집중하는 상류부문(석유개발)을 강화하고 유통부문을 정비하며, 가스나 석탄 채굴, 발전, 집단에너지 사업, 신재생에너지, 전기충전소 등 에너지 분야로 사업영역 확대를 도모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온기운 숭실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석유산업이 현재 처해 있는 어려움을 인식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때”라며 “국제 석유산업 변화를 주시하며 국내 업체가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 교수는 “정부가 정유업계의 사업다각화를 지원하고 국내 업체가 취약한 상류부문 진출을 지원하는 다양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며 “일본이나 중국 정부처럼 한편에서는 설비고도화와 설비폐기를 단행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업계에 다양한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석유기업이 상류 부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무역보험공사 등 정부계 금융기관의 성공불융자나 정책자금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온실가스 규제 정책이 에너지효율이 높은 국내 기업의 대외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지 않도록 규제 정도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유업종의 경우 무역집약도가 평균 76%에 달할 정도로 높은 만큼 정부가 무상할당을 적용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온 교수는 또 “석유가격이 하향 안정되고 있으며 향후 중장기적으로도 크게 상승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게 전망기관의 대체적인 관측”이라며 “따라서 인위적인 석유제품 가격인하 유도정책은 지양하고 제품가격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서까지 석유제품 가격의 하향안정을 인위적으로 도모하는 알뜰주유소, 석유전자상거래 등 정책을 더 이상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유사 정유부문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 각 사 취합]

정유사별 사업다각화 지수

[자료:대한석유협회]

[이슈분석]위기의 정유사, 탈출구는 석유 개발 부문으로 다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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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