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처리 현장을 가다]<상>기술로 신뢰 쌓은 미국 핵연료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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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다. 원자력 산업의 출발지이자 메카인 미국도 핵연료의 안전한 처리와 해당 기술의 산업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특히 유카마운틴에 처분장을 건설해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겠다는 계획이 오바마 정부 출범 후 철회되면서 미국의 핵연료 이슈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전자신문은 이달 18일부터 5회에 걸쳐 진행한 기획기사에 이어 후속편으로 해외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 상·하로 2회에 걸쳐 미국 샌디아 국립연구소와 노스아나 원전의 핵연료 처리 기술과 중간 저장시설 현황을 집중 조명한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현장을 가다]<상>기술로 신뢰 쌓은 미국 핵연료 처리

떨어뜨리고, 때리고, 불을 지른 후, 물속에 빠뜨린다. 미국 샌디아 국립연구소의 핵연료 용기 안전도 시험은 무모할 정도로 가혹하다. 이들은 수년간 반복적인 안전 테스트를 통해 핵연료 수송·저장 용기에 대한 신뢰성을 축적해오고 있었다.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위치해 있는 샌디아 연구소는 미국의 안보 관련 난제를 과학 기술로 풀어가고 있는 곳이다. 국가 무기 시스템에서 우주, 항공, 컴퓨팅,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 안보 대응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원자력과 관련해서는 소형 모듈형 원자로, 수송과 장기 핵연료 저장 용기, 핵연료 주기 개선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국가 안보에 밀접한 기술을 개발하지만 경영은 정부가 민간 기업에게 위탁하는 방식이다. 1993년까지는 AT&T, 1995년까지는 마틴 모리에타가 경영을 맡았고, 지금은 록히드마틴이 위탁 경영 중이다. 민간기업 위탁 경영을 통해 공공기관 순환 보직에 따른 전문성 약화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상용 수준에 올라선 미국의 핵연료 처리 기술

샌디아 연구소는 핵연료 처리가 미국이 닥친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중간저장과 영구처분용 핵연료를 운반하기 위한 용기와 저장시설은 시범 단계를 거쳐 일부는 실제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개발된 핵연료 용기는 기본적으로 추락, 충격, 화재, 수압 네 가지 테스트를 거친다. 핵연료 용기를 9m 높이에서 떨어뜨리고, 30분간 화재 속에 방치 한 후 200m 물속에 침수시키는 각 테스트는 개별 진행이 아닌 모두 중복이다. 핵연료 용기는 테스트를 모두 거친 후에도 핵 연료와 방사능 누출의 위험 요소가 없어야 한다.

엄격한 테스트지만,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요청에 따라 추가 안정성 테스트도 진행한다. 추가 테스트는 36m 높이에서 추락시키고 90분간 화재 속에 방치하는 등 그 조건이 더욱 가혹하다. 수송용 핵연료 용기를 트레일러트럭에 싣고 이송시키는 과정에서 진동 해석은 물론이고 실제로 열차와 충돌시키는 시나리오 테스트까지 진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건식 저장용기 연구가 활발하다. 핵연료 최종 처분장 건설 계획인 유카마운틴 프로젝트는 중단됐지만, 관련 기술 개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국 내에서 가동 중인 상당수의 원전이 사용후핵연료를 습식저장고에서 중간 저장시설로 이동해야하는 시장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샌디아 연구원은 핵연료 건식저장 역시 습식저장만큼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건식저장은 습식저장과 달리 냉각수와 별도 전원이 필요 없이 자연냉각 방법을 사용하는 만큼 자연재해 등 유사시 안정성이 뛰어나다고 보고 있다.

◇미래의 변수를 예측하고 대비

샌디아 연구소에서는 핵연료 저장용기 말고도 원전 관련 다양한 변수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연구소 한 쪽에 모아 놓은 찢어지고 구멍 난 원자로 모형은 이들의 시험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원자로 관련 연구는 원자로 내 용수 가열과 이로 인한 거품 발생에 따른 진동 균열 연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자로 균열보다는 핵 연료봉 멜트다운 방지 연구가 한창이다. 냉각수가 없는 상황에서 핵 연료봉이 공기 중에 노출, 고온현상으로 연료봉 피복의 지르코늄이 녹아내리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한다. 연료봉 멜트다운의 영향이 지반을 뚫고 지구 반대편 중국까지 영향을 미치는 차이나신드롬을 떠올리게 하는 연구다.

초기 연료봉 멜트다운 시험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실제로 연료봉 냉각수가 빠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관련 연구는 활기를 띄고 있다. 이 연구는 사용 후 핵연료 연료봉 다발의 최적 적재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1만년 이후 지층 변화에 대비한 용기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 용기는 핵무기 제조 후 발생한 초우라늄을 처분하는 핵폐기물 격리 시험시설(WIPP)에서 사용 중이다. 미국 30여개 지역에 퍼져있는 초우라늄 폐기물은 단계적으로 WIPP 시설로 이송 보관되고 있다.

WIPP에서 사용하는 초우라늄 저장용기는 지반 변화에 맞춰 용기가 파손 없이 찌그러지는 점이 특징이다. 암염으로 구성된 WIPP 처분장의 상층부 지반의 1만 년간 지형 변화를 예상한 대책이다. 용기에 저장된 초우라늄 폐기물은 용기 변형과 함께 단단한 고체처럼 압축된다. 큰 외형변화에도 용기의 파손을 막아 초우라늄이 방출하는 알파선을 차폐하는 게 기술의 핵심이다.

샌디아 연구소에서 실시한 핵연료 관련 실험 내용은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뉴멕시코주 주민들은 샌디아 연구소에서 진행한 핵연료 관련 연구에 대해 언제든지 모니터링하고, 일부 시험 동영상은 유튜브에 공개한다. 핵연료 저장기술 안정성에 대한 주민 신뢰감을 높이기 위함이다. 여기에 미 에너지부에서 직접 지역 대표자들과 정례적인 간담회를 이어가는 등 관련 실험이 주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폴 슈메이커 샌디아국립연구소 WIPP본부장은 “이번 달에도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부 장관이 직접 지역주민과 만남을 여는 등 꾸준하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며 “지속적인 대화 채널과 지역활성화, 개발기술에 대한 신뢰성이 핵연료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배경”이라고 밝혔다.

뉴멕시코주(미국)=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