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95>새 성장모델 IT839 전략

“개각을 하면 정보통신부 장관 자리를 누가 노리곤 하는데 진 장관은 잘 안 바뀌겠네요. 일하는 걸 보니까.”

2004년 6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은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정보통신부 14층 대회의실에서 진대제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으로부터 ‘IT 신성장동력, u코리아 추진전략’을 보고받고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저 오늘 좀 흥분했습니다. 저는 이런 비전, 이런 알찬 토론을 들으면 가슴이 잘 떨리는 버릇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유머 감각은 탁월했다. 장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고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6월 9일 정통부에서 열린 ‘it신성장동력 u-코리아 추진전략 보고회’에서 진대제 장관의 총괄보고를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제공>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6월 9일 정통부에서 열린 ‘it신성장동력 u-코리아 추진전략 보고회’에서 진대제 장관의 총괄보고를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제공>

노 대통령은 “유비쿼티스가 맞습니까, 아니면 유비쿼터스가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연단 앞줄에 앉아있던 석호익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역임,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 통일IT포럼 회장)이 “유비쿼터스가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노 대통령은 “아, 그래요. 유비쿼터스가 ‘언제 어디서나’인데 제가 뒤에 하나 더 붙이면 안 되겠습니까. 언제 어디서나 모두 정보격차가 없는….”

노 대통령은 IT839전략에 대해 “IT839라고 하기에 8, 3, 9를 더하면 20이라서 뭐 짓고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해 참석자들이 다시 박장대소를 했다. 중년 이상이면 거의 아는 이른바 ‘짓고 땡’이라는 화투놀이를 지칭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0년 남짓 기간에 누가 보더라도 한국은 세계 최고의 IT강국 반열에 오르는 엄청난 성과를 이룩했다”고 평가하고 “국민 모두가 IT회사 주식을 한 주라도 갖도록 하면 그게 바로 총체적 ‘u코리아’”라고 덧붙였다.

보고회에는 오명 과기부 장관(부총리 역임, 현 동부그룹 반도체IT전자총괄부문 회장)을 비롯해 김칠두 산자부 차관(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역임), 허운나 ICU 총장(현 스타트업포럼 이사장) 등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현 국가지식재산위원장), 백우현 LG전자 사장, 이용경 KT 사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김신배 SK텔레콤 사장(현 SK그룹 부회장), IT제조업체, 중소·벤처기업인 등 350여명이 참석했다.

보고회는 진대제 장관이 ‘u코리아 추진전략’ 총괄보고를 한 후 △이용경 KT 사장이 ‘IT인프라 고도화 전략’ △임주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현 고려대 교수)이 ‘신성장동력 기술개발 전략’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현 한국정보통신기능대학장)이 ‘함께하는 디지털세상 구현’을 각각 보고했다.

진대제 장관은 96개 화면으로 된 총괄보고에서 “정통부는 지난해 3월 IT산업이 갖고 있는 독특한 수직적·수평적 가치사슬을 발견했으며 이에 IT839라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주체별 세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IT839전략은 와이브로, DMB, 홈네트워크서비스 등 8가지 통신과 방송서비스를 참여정부 내에 도입해 그동안 성장이 둔화된 통신과 방송서비스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고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보고했다.

진 장관은 “IT839전략은 가치사슬 메커니즘을 이용해 국민소득 2만달러를 조기에 달성하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IT839전략을 통해 ‘유비쿼터스 지능 기반 사회·u코리아 진입’을 참여정부 내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정통부가 마련한 분야별 세부추진 계획서는 5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노 대통령에게 이날 보고회 참석은 의미가 특별했다. 노 대통령은 그해 3월 12일 탄핵소추를 받아 헌정사상 처음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그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서 대통령 직무에 복귀했다. 노 대통령이 복귀 후 첫 외부 참석행사가 ‘u코리아 전략보고회’였다.

진대제 장관의 증언.

“노 대통령은 IT에 관심이 각별하셨습니다. 탄핵 후 5월 18일 첫 국무회의가 열린 날 IT839전략 책자를 대통령 책상위에 올려놓았는데 회의하는 동안 책자만 보셨습니다. 표지를 보시고는 ‘이거 크렘린 코드인줄 알았더니 이게 IT839네’라고 하셨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보고회 중 남긴 메모 내용이 관료사회(官僚社會)에 화제가 됐다.

노 대통령은 메모지에 “장관님, 장관님, 우리 장관님, 잘한다 하더니 정말 잘한다”라고 적어 놓았다. 이 메모는 노 대통령이 진 장관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노 대통령은 보고회가 끝난 뒤 진 장관의 안내로 정통부 청사 1층에 마련된 u드림관을 둘러보았다. 그해 3월 18일 개관한 u드림관은 300평 규모에 △빌리지관 △기술전시관 △엔터테인먼트관을 설치했다. 이 드림관은 정부와 KT,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KTF, LG텔레콤 6개사가 40억원을 들여 공동으로 마련했다. u드림관은 IT 발전의 현재와 미래상을 보여주는 IT코리아의 상징이었다. 외국 정상 및 장관들과 IT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 최고경영자들도 이곳을 다녀갔다.

진대제 장관의 말.

“한국이 세계적인 IT강국이라고 하지만 보여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드림관을 만들었는데 하루에 500여명씩 다녀갔습니다. 처음 시큰둥하던 국회의원들과 국회의장도 다녀갔습니다.”

그러나 u드림관은 정통부가 폐지된 이후 2008년 7월 26일 문을 닫고 서울 상암동 DMC 내 디지털파빌리온으로 통합됐다.

정통부는 이에 앞서 그해 2월 4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이날 정통부는 업무계획에서 “올해 IT생산 240조원, 수출 700억달러를 달성하고 2007년에는 생산 380조원, 수출 1100억달러로 늘리며 2007년까지 2.3㎓ 휴대인터넷 서비스를 1000만가구에 보급하겠다”는 내용의 ‘신성장 광대역 IT추진전략’을 보고했다.

노준형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장관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은 “정통부는 지난해 수립한 차세대 이동통신과 디지털TV, 홈네트워크, IT SOC, 차세대PC, 임베디드 SW, 디지털콘텐츠, 텔레매틱스, 지능형로봇의 9대 신성장동력을 육성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기겠다”며 “이를 위해 2.3㎓ 휴대인터넷, 위성DMB 등 신규 서비스를 도입하고 광대역통합망과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 차세대 인터넷주소 등에 대한 인프라 구축작업에 8000억원을 투자하며, 민간이 1조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9대 신성장동력 전략 수립에는 송정희 정통부 마스터PM(서울시 정보화기획단장, KT 부사장 역임, 현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장)을 비롯해 정통부 PM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노 대통령은 96개의 화면 보고가 끝나자 “다 좋은 계획인데 너무 복잡해서 국민이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네. 쉽게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보세요”라고 지시했다.

진 장관은 이후 방안 마련에 고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서비스와 인프라, 후방 성장 신산업을 모두 칠판에 써놓고 보니 항목이 8개, 3개, 9개로 구성됐다. IT839전략의 시작이었다.

진 장관의 말.

“그렇게 해서 그 사업 명칭을 IT839전략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더욱이 8, 3, 9를 더하면 20이 되는데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상징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정통부 새해 업무보고는 곡절이 많았다. 청와대 보고 일주일을 앞두고 진대제 장관은 누적된 과로로 쓰러져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진 장관은 병실로 차관 이하 간부들을 불러 새해 업무보고 자료를 만들었다. 보고 당일 외출증을 발급받아 청와대로 갔다. 한 시간여 업무보고를 했더니 목소리가 잠겼다.

그간의 사정을 아는 노 대통령이 중간에 “이제 됐으니 그만합시다. 진 장관은 빨리 병원으로 가세요”라고 말했다. 진 장관은 곧장 병원으로 가 다시 입원했다.

IT839전략은 필연적으로 부처 간 갈등을 낳았다. 업무 영역을 놓고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문화관광부 등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진 장관은 전혀 괘념치 않았다.

부처 간 영역을 조정했던 김병준 당시 정부혁신분권위원장(현 국민대 교수)의 증언.

“부처 간 주도권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대통령 앞에서 장관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도저히 안 돼 청와대에서 10개 신성장동력 중 산자부 5개, 정통부 4개, 과기부 1개 등으로 조정해 통보했습니다. B 장관은 이 일과 관련해 사표를 냈어요.”

IT839전략 수립의 실무주역인 송유종 당시 정책총괄과장(현 산업통상자원부 감사관)의 말.

“관련 부처 간 10대 성장품목을 놓고 주도권 다툼이 극심했습니다. 언젠가 일요일 낮에 유영환 정보통신정책국장(정통부 장관 역임, 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이 급히 전화를 했어요. 월요일 대통령 주재 회의가 있는데 성장품목을 정통부에서 해야 하는 논리를 만들어 진 장관에게 보고하라는 겁니다. 밤새 작업해 월요일 아침 6시 반에 진 장관을 만나 보고했습니다.”

오상록 PM(현 KIST 강릉분원장)의 기억.

“로봇의 주도권을 놓고 산업자원부와 공방을 주고받으며 심하게 대립했습니다. 언젠가는 하루 종일 격론을 벌였습니다. 나중에는 산자부가 업무규정집까지 들고 와 토론했는데 논리에 밀리자 일방적으로 퇴장해 버렸어요.”

박세영 PM(현 경북대 교수)도 “SW와 관련해 문화관광부와 논리 싸움을 벌였다”고 회고했다.

노 대통령은 해외순방 시 IT839전략을 외국 정상들에게 널리 자랑했다. 한국 IT839전략을 벤치마킹한 국가도 적지 않았다.

진대제 장관의 회고.

“2005년 12월 9일 노 대통령을 수행해 말레이시아를 국빈방문했는데 그곳에서 IT889전략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IT839를 벤치마킹했다고 했습니다. 퇴임 후 대만정부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천수이볜 당시 총통 관저에 초대받아 갔더니 장관 13명이 모였는데 네 명의 성(姓)이 진씨였습니다. 대만도 IT839전략을 원용한 정책을 추진 중이었습니다. 최근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교수들이 IT839전략 연구차 왔기에 만나 자료도 주었습니다.”

IT839전략은 정부가 시장을 만들어 줌으로써 예산을 적게 쓰면서 성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IT성장동력의 새로운 모델이었다.

IT칼럼니스트